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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166
한자 玉山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옥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윤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청도군 각남면 옥산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 청도군 각남면 옥산동에서 청도군 각남면 옥산리로 개칭
사찰 대산사 -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옥산리 1142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9.32㎡
가구수 141가구
인구[남,여] 284명[남자 142, 여자 142명]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밀주지(密州誌)』에 따르면 풍각현 현남면 우척동(牛隻洞)과 대산동(代山洞)으로 표기 되어 있다. 또 1768년의 『대구 읍지(大邱邑誌)』에는 옥척동(玉尺洞), 대산동(代山洞)으로 표기 되어 있다. 우척은 뒷날 옥척으로 바뀌고 옆에 작은 부락은 오리밭으로 불리워 지고 있다. 우척동(牛隻洞)에는 마을의 산세 형상이 소가 누운 것과 유사하다고 하여 우척이라고 불리며, 자연 마을인 옥척과 오리밭이 있다. 대산동에는 자연 마을인 웃대산, 아랫대산과 신기가 있다.

[형성 및 변천]

옥산리는 밀양과 대구를 거쳐 청도로 옮겨온 풍각현에 속해 있던 곳으로, 풍각현 현남면 우척동(牛隻洞), 대산동(坮山洞)을 합해서 만들어진 마을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초동면에 있었던 우척과 대산을 병합하여 옥산동이 되었으며 각남면에 편입되었고, 1988년 옥산동에서 옥산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자연 환경]

천왕산이 높이 솟아 있다. 남·서·북이 막혀 있어 동쪽으로만 열려 있는 골을 따라 내려온 산줄기 따라 희나무골과 개명골, 통서골 등에서 발원한 물이 상옥산을 거쳐 신당으로 흘러 내려간다. 산이 높고 골이 깊어 경작지는 많지 않은 편이다. 산과 물을 따라 만들어진 경작지는 마을 앞으로 전개되어 있다. 옥산 2리 위에 축조된 대산지(臺山池)각남면 옥산리신당리, 녹명리까지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으며, 논 작물보다 과수 작물이 경제적 이익이 더 많아, 논을 밭으로 변화시켜 과수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현황]

2012년 8월 현재 면적은 9.32㎡이며, 총 141가구에 284명[남자 142명, 여자 142명]이 살고 있다. 동쪽은 각남면 함박리, 서쪽은 풍각면 덕양리·월봉리, 남쪽은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두곡리·소태리·요고리, 북쪽은 각남면 녹명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행정리는 옥산 1∼3리까지 있으며, 자연 마을로는 옥척과 오리밭, 웃대산, 아랫대산과 신기가 있다.

마을의 땅이 비옥하다고 하여 옥척이라 불리기도 한다. 달성 서씨의 집성촌이다. 오리밭은 지형이 베틀과 비슷한데, 베를 짜기 위해서는 실과 바다가 있어야 하므로 그 이름이 오리바다로 변해 오리밭이 되었다고 전한다.

마을 주민들의 주요 경제 활동은 감나무와 복숭아 재배이며, 퇴비 공장이 마을 안에 위치하고 있다.

상옥산에서 통서재[통시재]를 넘어 옛 서면으로 넘어가는 길이 있어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소태리와 연결되어 있다. 풍각 순환 버스와 사리에서 풍각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는 사동∼풍각 버스가 지나간다. 1960년대에 대구 남부 정류장에서 출발한 버스의 종착지가 되었던 옥산리는 지금은 회차지로 변경되었다.

마을 인구 감소에 따라 1999년 폐교된 대산 초등학교를 ‘대산 초등 스튜디오’로 개조하여 예술가들의 작품 활동 장소로 바뀌었으며, 주변에는 조계종 제9교구 동화사 말사인 대산사대산지 뒤쪽 월은산 안에 위치한다. 웃대산에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68호 청도 옥산동 토기 요지가 있다. 이 토기요지에서 발견된 토기는 4∼5세기의 토기로 가야형 토기와 원삼국 시대의 토기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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