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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1767
한자 雲山二里九尾洞祭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운산 2리 구미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여수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당산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운산 2리 구미 마을
성격 동제
의례 시기/일시 정월 대보름 [음력 1월 15일]
신당/신체 팽나무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운산리에서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마을 당산에서 올리는 마을 공동 제의.

[개설]

청도군 청도읍 운산 2리 구미 마을용각산에서 흘러나온 사천의 지류를 따라서 길게 형성된 마을이다. 사천의 지류 앞쪽으로는 풍각면 안산리로 넘어가는 도로가 조성되어 있다. 구미 마을은 서쪽으로 산을 등지고 앞쪽으로 사천의 지류가 만나는 지점에 남북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다. 구미 마을에서는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며 해마다 동제를 지내고 있다.

[연원 및 변천]

운산 2리 구미 동제 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마을 주민들은 마을이 생겼을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구전으로 전하여 들었다고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운산 2리 구미 동제 는 당산이라 불리는 팽나무 한 그루 제를 올린다. 이 나무는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마을의 중간에 위치한다. 사천의 지류인 계곡을 건너자마자 오른쪽에 있는 당산은 계곡 방향으로 너비 150㎝ 정도의 사각형 시멘트 제단이 마련되어 있으며, 그 뒤쪽으로 팽나무 한 그루가 있다. 팽나무는 나이가 오래되어 둥치 중간이 비어 있는 등 생육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편이다. 당산의 옆으로는 계곡을 따라 길게 잡목들이 심어져 있으며, 다리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는 팔각정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절차]

운산 2리 구미 동제 는 정월 초열흘날[음력 1월 10일] 무렵에 제관을 선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과거에는 대내림을 통하여 1년 전에 제관을 선출하였지만, 1990년대 이후부터는 인구 감소와 노령화 등을 이유로 길일인 생기복덕일(生氣福德日)을 따져 제관을 선출해 오다가 2010년 이후부터는 아예 집마다 돌아가며 제관을 담당하고 있다.

선출된 제관은 정월 대보름까지 아침저녁으로 목욕재계하고 나쁜 것을 보지 않으며 초상집에 출입하지 않고 육식을 금하는 등 금기 사항을 지킨다. 그다음으로 제삿날 전날에 금줄을 만들고 제삿날 아침이 되면 당산의 주변을 청소하고 금줄을 두른다. 금줄에는 솔가지를 꽂지 않고 중간 중간에 한지를 꽂으며, 나무 둥치에는 큰 한지를 직사각형으로 접어서 중간에 꽂아 둔다.

금줄을 두르고 나서 제관은 청도읍 장을 이용하여 제물을 산다. 과거에는 돼지고기·소고기를 모두 구매하였지만 2000년 이후에는 인구 감소 등으로 먹을 사람이 없어 소고기만을 올린다. 제물은 제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삼색과실·나물·백떡[백설기]·밥을 올리는 것은 동일하며, 제관에 따라서는 나물과 과일의 종류가 많아지기도 한다. 술은 청주를 올린다. 제의를 지내기 한 시간 전에 제관은 준비한 제물을 당산 아래에 차린다. 상차림 후 자정이 넘으면 제의를 올리는데 가끔 새벽 2시∼3시에 올리기도 한다. 제의의 절차는 유교식 기제사와 동일하며, 축문을 읽고 소지(燒紙)[부정을 없애고 소원을 빌려고 태우는 흰 종이]를 올리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축문]

축문의 내용은 산신(山神)과 동신(洞神)에게 인사를 올리고, 그다음으로 마을의 풍년과 마소 및 가축의 안전 등을 기원하며, 이어서 마을 주민의 안전을 빌어주고 나서 마지막으로는 외지로 나간 사람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순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지 또한 축문의 순서 구성과 동일한 순으로 올리며, 주민을 위한 소지는 가구주의 성을 모두 부르며 올린다.

[부대 행사]

제의가 끝난 후 제관은 간단하게 음복하고 나머지 음식들은 모두 마을 회관으로 옮긴다. 그날 아침이 되면 마을 사람들이 마을 회관에 모여 제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나서 함께 음복하며 대동 회의를 개최한다.

[현황]

마을 인구의 감소와 노령화 등을 이유로 운산 2리 구미 동제는 그 절차와 제물의 양을 간소화하였다. 1970년대 동제는 마을의 주요 행사이자 마을 잔치였다. 일정한 금액을 내고 함께 음식을 나눠 먹는 잔치와도 같았기에 음식도 넉넉하게 준비해야 했고 이에 따라 동제의 규모 또한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인구 감소와 더불어 음식을 나눠 먹을 사람도 줄어듦에 따라 제물의 양 또한 간소화되었다. 이와 함께 제관을 담당할 사람의 노령화 등으로 말미암아 절차도 간소화된 것이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어떤 형태가 되었든 동제에 대한 믿음을 이어 나가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변화가 없다. 주민들은 당산이 있기에 마을이 현재까지 유지되고 아무 탈 없이 지낼 수 있었다고 믿으며,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동제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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