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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233
한자 珀谷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윤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청도군 금천면 박곡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 청도군 금천면 박곡동에서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로 개칭
성격 법정리
면적 12.17㎢
가구수 119가구
인구[남,여] 238명[남자 116명, 여자 122명]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운문사와 역사를 같이하는 대비사가 있어 오래전부터의 기록이 있는 마을이다.

[명칭 유래]

조선 총독부의 기록에 박석동(珀石洞)이라는 이름은 흙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박(珀)은 호박을 의미하는데, 호박은 지질 시대 나무의 진 따위가 땅속에 묻혀서 수소, 탄소, 산소 등과 화합하여 돌처럼 굳어진 누렇고 광택이 있는 광물이다. 박곡리는 예전부터 도자기가 발달했던 마을이다.

마을로는 박곡, 미륵당, 골안, 한질각단이 있다. 박곡은 박실, 백곡 등으로 불리는데 이는 마을의 형상이 박 같아서 부르는 이름이며, 원광 법사대비사를 창건할 당시 주위를 둘러보니 계곡이 100여 개나 되었다고 하여 백곡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하기도 한다. 미륵당은 불상이 있는 마을로 마을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골안은 임당리로 넘어가는 곳이다. 한질각단은 마을에 들어가는 길 입구에 생겨난 마을이다. 한질은 큰길을 말하며 신작로가 생긴 후 불리는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청도군 중동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박곡동이라 하여 금천면에 편입되었다. 1988년 박곡동에서 박곡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자연 환경]

억산 바로 아래에 자리 잡은 박곡리는 남쪽과 북쪽은 산등으로, 그 사이 계곡 가운데 형성된 마을이다. 서쪽으로만 트여 있어 신지리를 나가야 큰 도로와 연결이 된다. 박곡리는 여러 곳에 띄엄띄엄 경작지를 따라 형성된 자연 마을이 많으며, 경작지는 경지 정리가 안 되어 있다. 박곡리 안쪽에 만들어진 대비지는 마을 앞에 있는 논들을 적셔주기에 충분하지는 않으나, 물 가둠이 좋은 흙 성분 덕분에 물이 모자라는 일은 별로 없다고 한다. 마을 위쪽에 내화 벽돌을 만드는데 필수적인 규석 광산이 있어 아직도 채취를 하고 있다. 논이 밭으로 바뀌어 대추가 경제 작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현황]

2012년 6월 현재 면적은 12.17㎢이며, 총 119가구에 238명[남자 116명, 여자 12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운문면 신원리, 서쪽은 금천면 신지리·오봉리, 남쪽은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원서리, 북쪽은 금천면 임당리·운문면 방음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박곡, 미륵당, 골안, 한질 각단이 있다. 마을 서쪽으로만 트여 있어 신지리를 나가면 919번 지방도를 만난다.

문화재로는 박곡리 가운데 미륵당에 있는 보물 제203호 청도 박곡리 석조 여래 좌상과 보물 제834호인 청도 대비사 대웅전이 있다. 점마에는 제일 마지막으로 박실 사발을 만들었던 장인의 후손과 가마터가 남아 있으며, 아직도 자기의 틀과 찌꺼기들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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