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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514
한자 淸道珀谷里石造如來坐像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불상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박곡길 295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남궁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63년 1월 21일연표보기 - 청도 박곡리 석조 여래 좌상 보물 제203호로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8년 - 화재로 불상 손상
현 소장처 청도 박곡리 석조 여래 좌상 -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 653지도보기
성격 불상
재질 화강암
크기(높이) 2.76m[전체 높이]|1.54m[불상 높이]
소유자 국유
관리자 청도군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제203호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에 있는 통일 신라 때의 석조 여래 좌상.

[개설]

청도 박곡리 석조 여래 좌상은 통일 신라 때의 석불로 박곡리 미륵당 마을 중앙에 보호각을 세워 봉안하고 있다. 1928년 화재로 불상의 머리와 손, 광배, 대좌 등의 박락이 심하다. 1963년 1월 21일에 보물 제203호로 지정되었다.

불상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석조 여래 좌상이 위치한 박곡리 마을 안의 미륵당은 『삼국유사』에 전하는 소작갑사지(小鵲岬寺地) 혹은 대비갑사지(大悲岬寺地)로 추정되고 있으나 주변에서 출토되는 유물이 없어 단정하기 어렵다. 보호각 앞에는 고려 시대 석탑 1기가 서 있다. 또한 연꽃무늬와 넝쿨무늬가 새겨진 석조 광배(光背)가 훼손된 상태로 마당에 남아 있지만, 석조 여래 좌상과의 연관성 여부는 알 수 없다.

[형태]

전체 높이는 2.76m이고, 불상 높이는 1.54m이다. 얼굴이 심하게 훼손되어 눈, 코, 입의 일부만이 관찰된다. 목에는 생사를 윤회하는 인과(因果)를 나타내는 3줄의 삼도가 표현되었다. 넓고 당당한 어깨와 살이 오른 가슴, 잘록한 허리 등 전체적으로 강건함과 안정감을 준다. 왼쪽 어깨를 감싸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편단우견의 법의는 신체의 굴곡에 따라 밀착하여 흘러내려 다리까지 이어진다.

손은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악귀의 유혹을 물리치고 깨달음에 이른 순간을 상징하는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결가부좌한 두 다리에는 돋을새김으로 옷 주름을 표현하였으며, 양 다리 사이에는 부채꼴의 옷자락이 표현되어 있다. 대좌 또한 박락이 심하나 전형적인 통일 신라의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으로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중대석에는 탱주가 새겨져 있을 뿐 별다른 장식이 없다.

[특징]

청도 박곡리 석조 여래 좌상은 비록 화재에 의한 박락이 심하지만 당당한 어깨와 잘록한 허리 등 균형 잡힌 신체 비례와 유기적인 신체 표현, 풍부한 살붙임 등으로 보아 통일 신라 때인 8세기경의 석굴암[석불사] 불상 계통의 조각으로 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청도 박곡리 석조 여래 좌상은 양식적으로는 균형 잡힌 신체 비례, 공간 분리를 통한 유기적인 신체 표현, 풍부한 살붙임 등 통일 신라 석굴암 불상을 잇고 있는 전성기 조각으로 볼 수 있다.

도상학적으로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에 이르는 장면을 표현한 우견편단의 항마촉지인 여래 좌상으로, 이것은 인도와 중국을 거쳐 통일 신라 시기 전반에 걸쳐 유행한 도상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