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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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열(洪殷悅)을 시조로 하고 홍시원(洪時源)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원 시조 홍천하(洪天河)는 중국의 강남 휘주 사람으로 태학사였다. 640년(고구려 영류왕 23) 당 태종이 사신 8명을 파견할 때 그중의 한 사람으로 평양에 들어온 뒤, 은수포의 당관으로 옮겨 고구려 문화 진흥에 많은 공을 세웠다. 왕이 홍천하가 사는 곳을 당성(唐城)이라 하고 관적으로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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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경상북도 청도 운문사 주지였던 승려 일연이 저술한 역사서. 『삼국유사(三國遺事)』는 1281년(고려 충렬왕 7년)에 승려 일연(一然)이 운문사 주지로 있을 당시 저술한 역사책으로, 현존하는 우리 고대 역사책인 『삼국사기』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고 있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마찬가지로 신라·백제·고구려 세 나라의 역사뿐만 아니라 고조선과 기자 및 위만 조선을 비롯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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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순(都順)을 시조로 하고 도경신(都慶新)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도씨(都氏)의 연원은 한(漢) 무제 때 중국 여양 출신 북파장군 도계(都稽)가 여가의 반란을 평정한 공으로 도씨 성을 하사받아 비롯되었다고 보는 설과, 『경술보(庚戌譜)』에 따르면 한(漢) 성제(成帝) 때 고구려 동명왕의 맏아들 유리(瑠璃)가 이복동생 비류(沸流)·온조(溫祚)와 왕위 쟁탈을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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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령(全永齡)을 시조로 하고 전시현(全時鉉)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옥산 전씨(玉山全氏)의 도시조(都始祖)인 전섭(全聶)은 고구려 동명왕(東明王)의 셋째 아들 온조(溫祚)가 기원전 18년 백제를 개국할 때 오간(烏干)·마려(馬藜)·을음(乙音)·해루(解婁)·흘간(屹干)·곽충(郭忠)·한세기(韓世奇) 등과 함께 공을 세워 십제공신(十濟功臣)으로 환성군(歡城君)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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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청도의 가실사에 머물렀던 신라의 승려. 원광(圓光)[547∼630]의 성은 박씨(朴氏)로 경상북도 경주시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630년 황룡사에서 입적하였다. 청도의 가실사(加悉寺)에 머물던 601년(진평왕 23)경 귀산(貴山)과 추항(帚項)이 가실사로 찾아와 계명(誡銘)을 구하자, ‘화랑도의 세속 오계(世俗五戒)’를 전해주었다. 원광의 생애와 활동이 어떠했는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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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정월 초부터 대보름까지 편을 갈라 윷을 던져 윷판의 말을 움직여 승패를 가르며 놀던 놀이. 윷놀이는 나무로 만든 네 개의 윷가락을 던져서 윷 패가 엎어지고 젖혀진 상황에 따라 도·개·걸·윷·모가 결정된다. 이를 바탕으로 윷말을 움직이며 서로 잡고 잡히면서 승부를 겨룬다. 사희(柶戱) 또는 척사희(擲柶戱)라고도 한다. 윷놀이에 대해서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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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 있었던 초기 성읍 국가. 이서국(伊西國)은 신라의 전신인 사로국(斯盧國)과 음집벌국(音汁伐國), 실직국(悉直國), 압독국(押督國), 조문국(召文國), 감문국(甘文國), 사벌국(沙伐國), 우시산국(于尸山國), 거칠산국(居漆山國) 등과 함께 삼한 시기에 경상도 지역에 존재하였던 소국(小國)이다. 현전하고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역사기록인 『삼국사기(三國史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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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옹(邢顒)을 시조로 하고 형대걸(邢大傑)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진주 형씨(晋州邢氏)의 시조 형옹(邢顒)은 중국 당(唐)나라 태종(太宗) 때 사람으로, 고구려 영류왕(榮留王)의 요청에 따라 8학사(八學士)의 한 사람으로 평양에 들어와 정착하였다. 형웅의 13세손 형방(邢昉)이 고려 명종(明宗)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고, 15세손 형공미(邢公美)가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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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경상북도 청도 지역의 땅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擇里志)』 복거 총론 산수 편에서 청도를 ‘운문산과 이어진 봉우리가 겹쳐진 멧부리들로 골이 깊숙하다. 불가에서는 성인 1천여 명이 세상에 나올 터’라 하고 ‘병란을 피할 복스러운 땅’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청도군은 영남 알프스라 불리는 구만산과 억산, 운문산과 지룡산이 감싸고 비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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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슬사라 불리는 가슬갑사는 운문사 일대 오갑사(五岬寺) 중 하나로서 『삼국유사』 원광서학 조(圓光西學條)에 따르면 “지금의 운문사 동쪽 구천 보 가량 되는 곳에 가서현이 있는데 혹은 가슬현이라고도 한다. 고개의 북쪽 골짜기에 절터가 있으니 바로 그것이다[今雲門寺東九千步許, 有加西峴, 或云嘉瑟峴, 峴之北洞有寺基是也)].”라고 그 흔적을 기록하고 있다. 600년(신라 진평왕 22)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