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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499
한자 六二五戰爭
이칭/별칭 한국 전쟁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권대웅

[정의]

1950년부터 1953년까지 북한의 남침으로 경상북도 청도군을 포함한 대한민국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개설]

1948년 8월과 9월에 이루어진 남북한 단독 정부 수립은 한반도 분단을 공식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내외적으로 조성된 중국 대륙 공산화, 주한 미군 철수, 애치슨 선언, 국군의 국방력 열세와 남한 내 남로당의 불법화로 인한 붕괴, 정치·사회·경제적 혼란 등 북한에 유리한 환경들이 형성되었다. 북한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바탕으로 1950년 6월 25일 무력 남침을 강행하였다. 전쟁은 1953년 7월 27일까지 3년 1개월간 이어졌다.

1950년 6월 27일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미 해군과 공군으로 하여금 한국군을 지원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1950년 7월 7일 유엔은 맥아더를 총사령관에 임명하여 16개국 유엔군 파견을 결정했다. 이때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군 작전 지휘권을 맥아더에게 이양했다.

초반에는 북한군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며 낙동강까지 남하했지만 곧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이 전개된다. 서울과 38선 수복 후 마침내 1950년 10월 26일 국군 제6 사단이 압록강의 국경 지역인 초산에 도착하고 수도 사단은 청진까지 수복하였다.

그러나 중공군이 11월 4일 ‘항미 원조 보가 위국(抗米援朝保家衛國)’ 명분으로 한국전에 참전하자 전세가 역전되어 북한군은 1951년 1월 4일 다시 서울을 점령했다. 1월 25일부터 유엔군은 반격을 재개하여 3월 14일 서울을 재탈환하고 3월 24일에는 38선을 다시 돌파하는 등 역공세가 이어졌다.

1951년 4월 맥아더 해임, 공산군 춘계 공세, 미국 정부의 제한 전쟁 목표 등 전쟁 지형이 변하면서 전황은 교착 상태에 빠져 들었다.

양측은 필요에 의해 휴전 문제가 구체화되어 난제 끝에 1953년 7월 27일에 휴전 협정을 했다. 막대한 피해만 초래했을 뿐 승자 없이 끝난 6·25 전쟁은 이로써 막을 내린다.

[청도 지역의 상황]

1946년 5월 미소 공동 위원회의 협상 결렬, 대구 10월 사건, 2·7 사건 등을 거치면서 남한 내 모든 좌익 세력들이 불법화되자 남로당 방침에 따라 무장 게릴라 조직인 남조선 인민 유격대가 전국적으로 5개 유격 전구에 결성되었다. 경주·영천·영일·양산·울산·동래·부산을 중심으로 한 영남 유격 지구에 편성된 청도군은 운문산비슬산 일대를 거점으로 지서 습격, 방화, 경찰 살인 등의 행동을 감행하였다. 또한 대구 주둔 제6 연대의 반란 가담자 일부가 운문산비슬산 등지로 유격대에 합류하면서 청도 지역 유격대 활동은 더욱 활발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대구 주둔 제3 여단 제6 연대 등이 청도 지역에 토벌 사령부를 설치하였다. 또한, 청도 경찰서 사찰계를 비롯한 육군 3사단 백골 부대, 호림대(虎林隊), 육군 50사단 등이 주둔 또는 파견되어 상황에 따라 수시로 토벌 작전을 실시하는 등 좌우익 대립 양상에 놓여 있었다.

6·25 전쟁 기간 중 청도 지역은 정규군간의 충돌과 극심한 혼란은 일어나지 않은 미해방 지역에 속했다. 그래서 1950년 7월∼8월 인민군이 청도군과 접한 창녕·현풍 등지에 교두보를 확보할 무렵 청도에서는 비공식적으로 피난 준비령이 발령될 예정이었으며, 전투 지역과 인접한 각북면 등에서 소개령을 내리는 수준에 머물렀다. 다만 전선 후방을 교란할 소지가 있는 잠재적 적(敵) 제거 차원에서 청도군에서도 7월 초순경부터 보도 연맹원을 중심으로 예비 검속을 시작하여 청도 용각산 곰티재와 경산시 평산동 산42-1번지 폐코발트 광산, 군내 여러 지역에서 많은 이들이 살해되었다.

특히 전쟁 동안 청도군에는 약 40여만 명의 피난민들이 몰려들어 전쟁 피난처로서 기능을 하였다. 이들은 운문면 대천교 부근의 하천에서부터 금천면 일대, 매전면, 유천에 이르는 동창천 전역, 청도천 유역의 일부 하천변 등에 피난 생활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동창천 유역에 가장 많은 피난민이 집결하여 생활하였는데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방문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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