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8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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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在鎬 |
영어공식명칭 | Jeong Jaeh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재현 |
출생 시기/일시 | 1863년 12월 18일 - 정재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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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94년 - 정재호, 무과에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906년 4~5월 - 정재호, 의병 민종식과 함께 5월 26일 홍주성 점거 |
몰년 시기/일시 | 1944년 3월 18일 - 정재호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1년 - 정재호,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
거주|이주지 | 충청남도 예산군 |
묘소 |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222-17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의병 |
[정의]
개항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의병.
[가계]
정재호(鄭在鎬)[1863~1944]의 본관은 하동이다. 함양군 수동면에서 산 몽천(夢泉) 정광한(鄭光漢)[1588~1648]의 후손이며, 도곡서원에 제향된 만강재(晩康齋) 정덕하(鄭德河)[1782~1854)의 증손이다.
[활동 사항]
정재호는 1894년(고종 31) 무과에 급제하였다.
1906년 봄에 민종식(閔宗植)[1861~1917]이 의병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定山)에 찾아가 담화를 나눈 후 뜻이 맞아 민종식과 함께 거병하였다. 1906년 5월 11일 중군(中軍)으로서 충청남도 홍산(鴻山)[부여군 홍산]에 모여 서천(舒川)과 남포(藍浦)[보령군 남포]에서 총과 탄환을 취한 뒤 보령(保寧)을 거쳐 결성(結城)[홍성군 결성]에서 자고 5월 26일에 홍주성(洪州城)[홍성군 홍성]을 들어가 점거하였다. 당시 총을 멘 군사는 600여 명이고 창을 든 군사가 200여 명이었으며, 무기가 없는 백면서생(白面書生)이 300여 명이었다고 한다.
1906년 5월 20일부터 5월 30일까지 홍주성을 지키면서 죽은 일본인이 10여 명이었다. 생포하였거나 총살한 자는 전후에 걸쳐 도합 4명이었다. 5월 30일 한밤중에 홍주성이 함락되자 정재호는 은신하여 재기를 도모하다가 체포되었다. 1907년 7월 지도(智島)로 유배(流配)되었다가 1년여 만에 사면되어 풀려났다. 일제의 강점 후에는 세상 일에 뜻을 접고 산천을 구경하면서 여생을 마쳤다고 전하여진다.
[묘소]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