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8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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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升鉉 |
영어공식명칭 | Ha Seunghyeon |
이칭/별칭 | 하찬현,하석현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고은영 |
출생 시기/일시 | 1895년 7월 21일 - 하승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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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2일 - 하승현, 함양장터에서 만세운동에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19년 4월 2일 - 하승현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53년 - 대한의사 하승현 기념비 건립 |
추모 시기/일시 | 1971년 - 대한의사 하승현 사적비 건립 |
추모 시기/일시 | 1977년 - 하승현, 대통령표창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1년 8월 15일 - 하승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4월 2일 - 하승현, 함양군 함양읍 장날 의거 |
출생지 |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 508 |
묘소 | 대한의사 하승현 기념비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대덕리 359-3 인근 |
묘소 | 대한의사 하승현 사적비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필봉산길 49[교산리 1047-1]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함양장터 3.1만세운동 참여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독립운동가.
[가계]
하승현(河升鉉)[1895~1919]은 1895년 7월 21일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양이다. 부친은 독립운동가 하재연(河在衍)[1866~1940], 숙부는 하재익(河在翼)[1883~1922]이다.
[활동 사항]
1919년 4월 2일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장터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보다 앞서 3월 28일 만세운동을 주동한 정순길(鄭淳吉)[1896~1962]·윤보현(尹普鉉)·정순귀(鄭淳貴)·노경식(盧璟植) 등 4명이 일본 헌병에게 체포된 사실에 분개한 김한익(金漢益)[1890~1933]이 다시 한 번 함양읍 장날 의거를 계획하였고 이 소식을 들은 하승현은 적극 찬성하였다.
4월 2일 김한익이 오후 5시쯤 직접 만든 대형 태극기를 들고 장터 중앙에 쌓아 놓은 소금가마니 위로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치자 3,000여 명의 군중이 독립만세를 따라 외쳤다. 하승현은 선두에 서서 시위하며 장터를 행진하다가 긴급 출동한 일본 헌병에 의하여 김한익이 체포되자 격노한 시위 군중과 함께 일본 헌병분견소로 달려가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윤영하(尹榮夏)[?~1919]와 함께 애국지사 석방을 요구하며 분견소 정문으로 돌진하다가 일본 헌병의 사격으로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53년 병곡면장의 발의와 함양군수 동의로 뇌계공원 도로 건너편에 대한의사 하승현 기념비를 건립하였으며, 1971년 대한의사 하승현 사적비가 건립되어 함양군 상림공원 내 대한의사 김한익 기념비와 나란히 있다. 1977년 대통령표창을 받았으며, 1991년 3·1운동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