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8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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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東鎬 |
영어공식명칭 | Kim Dongh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고은영 |
출생 시기/일시 | 1894년 3월 18일 - 김동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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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31일 - 김동호,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안의읍 장날 의거에 참여하였다가 일본에 피체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9월 5일 - 김동호, 대구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 선고 |
몰년 시기/일시 | 1970년 9월 2일 - 김동호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8월 15일 - 김동호,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남효리 20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장날 의거 참여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김동호(金東鎬)[1894~1970]는 1894년 3월 18일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남효리에서 출생하였다.
[활동 사항]
3·1운동 확산에 따라 함양 지역에서는 김병창(金炳昌), 임채상(林采尙), 정순완(鄭淳完), 전재식(全裁植), 조제헌(趙濟憲), 김채호(金采鎬), 최석룡(崔碩龍) 등이 안의읍 장날인 3월 31일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러나 3월 25일 수동면 상백리에 사는 고재경(高哉景)·정재원(鄭在元) 등이 안의읍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실패하였다. 이후 일본 군경의 경계가 삼엄해짐에 따라 주동 인물들은 비밀리에 동지를 규합하고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김동호는 1919년 3월 31일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안의읍 장날 의거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일본 경찰에 김병창 등 주동자 5명이 체포되었다. 이에 격분한 김동호는 오후 2시쯤 ‘대한독립만세’라고 쓰인 큰 깃발을 앞에 세우고 1,5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체포된 동지의 석방을 요구하며 오후 7시까지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지원 요청을 받고 출동한 거창 일본군 수비대 20여 명은 무력을 행사하며 시위 군중을 닥치는 대로 체포하였고, 김동호도 이때 체포되었다. 1919년 9월 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받았으며, 이후 중국에 가서 활동하다가 해방 후에 귀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으며, 1990년에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