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의장터 3.1만세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387
한자 安義-3.1萬歲運動
영어공식명칭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of 1919 in an-ui Market Site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석천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양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단 시기/일시 1919년 3월 31일연표보기 - 안의장터 3.1만세운동 발생
발생|시작 장소 안의시장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석천리 지도보기
종결 장소 안의시장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석천리 지도보기
성격 만세운동
관련 인물/단체 전병창|임채상|정순완|김채호|최석룡

[정의]

1919년 3월 31일에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석천리 안의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역사적 배경]

1918년 1차대전 종결 이후 미국 대통령 윌슨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와 갑작스러운 고종 황제의 붕어 등을 계기로 조선 민중들이 전국적으로 만세 운동을 일으키게 된다. 3.1만세운동의 영향은 경상남도 함양군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전병창(全炳昌)·임채상(林采尙)·정순완(鄭淳完) 등이 결사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경과]

전병창·임채상·정순완·전재식(全裁植)·조제헌(趙濟憲) 등은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봉산리 급천서당의 청년학생 김채호(金采鎬)와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 최석룡(崔碩龍) 등과 합세하여 안의면 장날에 의거를 하기로 밀의하고, 거사날을 3월 31일로 확정하였다.

3월 31일 안의장터 한가운데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며, 앞장서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미 3월 28일에 함양장터에서 만세운동이 있었기에 일본 경찰들은 주동자를 즉시 체포해 연행하였다. 이에 만세운동에 동참한 군중들은 주동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항거하였고, 대대적인 만세운동으로 퍼지게 되었다. 3월 31일 7시까지 계속해 만세운동이 이어졌고 일본 군경은 인근의 거창 수비대에 지원군을 요청하여 군중들을 체포하여 겨우 강제 해산시켰다.

[결과]

안의장터에서 주동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하다 체포되었던 김동호(金東鎬)가 1990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의의와 평가]

3.1운동 직후 주동자 5명을 비롯해 지역 인사들이 일본 경찰들에게 잡혀 옥고를 치르거나 고문을 당한 기록이 있으나 독립지사들 중 아직까지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 이들이 많아 전수조사가 시급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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