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4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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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2.7咸陽鬪爭 |
영어공식명칭 | February 7 Struggle at Hamyang |
이칭/별칭 | 2.7구국투쟁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동석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48년 2월 7일 - 2.7함양투쟁 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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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 시기/일시 | 1947년 8월 12일 -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의에 따라 열린 미소공동위원회 결렬됨으로써 독립적·민주적 통합정부 수립 목적 무산 |
발생|시작 장소 | 지리산 천왕봉 -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산 208 |
종결 장소 | 함양군 - 경상남도 함양군 |
성격 | 사건 |
관련 인물/단체 | 하준수|박병두|이재철|하갑수|하판수|하종구|이성수|노길영 |
[정의]
1948년 2월 7일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5·10총선거를 반대하여 발생한 구국투쟁.
[역사적 배경]
모스크바 삼상회의 이후 우익들은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격렬하게 전개하였다. 이승만은 가능한 지역만이라도 총선을 실시하여 정부를 수립하자는 입장을 내세우며, 미국에서 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를 앞둔 시기였으므로 우익진영에서는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였다. 이에 좌익 세력들은 5.10총선거 반대투쟁을 전개하였다.
[경과]
2.7함양투쟁에 참여한 사람들은 하준수를 비롯하여 박병두, 이재철, 하갑수, 하판수, 하종구, 이성수, 노길영 등이다. 일제 강점기부터 하준수와 함께 항일 투쟁에 참여했던 청년운동가들이었다. 이들 중에는 일제 강점기부터 사회주의운동을 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해방 후 친일 경찰들에 의해 빨갱이로 몰려 지리산으로 쫓겨온 사람들이었다.
하준수는 지리산 천왕봉에 지휘본부를 두고 경찰의 감시망에 들지 않은 당원들을 내려보내 2.7함양투쟁을 진두지휘했다. 1948년 2월 7일 지리산 천왕봉에 쌓아 둔 달집을 태운 봉화를 신호로 2.7함양투쟁을 시작하였다. 함양군 곳곳에 전기가 두절되고, 교량이 폭파되었다. 경찰과 우익단체인 서북청년회 회원들의 집을 습격하기도 했다.
[결과]
우익 청년단체인 서북청년회와 대한청년단 등의 폭압적인 활동으로 민간인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 또한 군정경찰과 우익 청년단체들의 폭력행위 때문에 날이 갈수록 더 많은 청년들이 하준수를 찾아 지휘본부인 지리산으로 몰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