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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산부」[이기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2038
한자 雲門山賦-李璣玉-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상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배경 지역 운문산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지도보기
성격 시|부(賦)
작가 이기옥

[정의]

조선 중기 경상북도 청도의 재지 사족인 이기옥운문산을 유람하고 남긴 부(賦).

[개설]

이기옥(李璣玉)[1566∼1604]은 「운문산부(雲門山賦)」 외에도 「영춘남곡기(永春南谷記)」, 「유예안청량산록(遊禮安淸凉山錄)」, 「유강릉오대산록(遊江陵五臺山錄)」 등을 남기는 등 다분히 산수 취향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운문산부」는 청도의 재지 사족인 이기옥운문산을 직접 유람하고 남긴 글이다.

[구성]

전체가 6언구로 이루어진 한시로, 총 520구에 달하는 장편 작품이다.

[내용]

「운문산부」는 1587년 늦봄에 이기옥이 세속의 경영에 몰두하던 몸과 마음을 떨치고자 운문산을 유람하고 지은 작품이다. 여정에 따른 운문 산수의 아름다음과 그 속에서 노니는 흥취를 운문의 형식으로 묘사하였다.

유람 행로는 먼저 이서국(伊西國)의 옛 성을 지나고 웅현(熊峴)을 넘어 동창(東倉)과 우연(愚淵)에 있는 김대유(金大有)[1479∼1551]의 유적에 이르렀다. 이어서 선암(仙巖)의 박하담(朴河淡)[1479∼1560]의 유적을 둘러보고 운문사와 그 주변을 둘려본 뒤, 발길을 돌려 두암과 낙화암을 거쳐 눌연·동당·오대 등을 답사하였다.

여행의 출발에서부터 행로에서 본 경관과 감회를 순차적으로 서술하고, 후반부에서는 전체적 감회와 더불어 자신의 생애에 대한 회고와 다짐 등으로 결론짓는다. 아래 내용은 삼족대(三足臺)를 둘러본 뒤 경관과 감회를 서술한 부분이다.

일구구지무양(一區丘之無恙)[한 구역 언덕은 탈이 없고]

수간당혜의의(數間堂兮依依)[몇 간의 당실도 그대로일세]

적기진어사정(跡旣陳於沙汀)[자취는 이미 물가 모래밭에 펼쳐졌고]

초이심어송경(草已深於松逕)[풀은 소나무 오솔길에 무성하네]

사거이인하재(事去而人何在)[일은 지나갔고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면왕사이흠경(緬往事而欽敬)[지난 일 생각하며 공경해 마지않네]

작일인이불기(作逸人而不羈)[일인이 되어 얽매이지 않고]

호호연혜락락(浩浩然兮落落)[거침없이 호방하게 노니셨네.]

함화요이원도(含華曜以遠蹈)[빛나는 해를 머금고 멀리 밟으며]

임풍류이자적(任風流而自適)[풍류에 맡긴 채 유유자적하셨네]

차지대이의활(嗟志大而意豁)[아, 뜻이 크고 생각이 넓으며]

관파변이피문구(冠波弁而被文裘)[물결 무늬 고깔을 쓰고 문채 나는 갖옷을 입으셨네]

의도광이심아(懿度廣而心雅)[아, 도량이 넓고 마음이 바르며]

즉산렵이즉계어(卽山獵而卽溪漁)[산에 가서 사냥하고 개울에 가서 고기 잡으셨네]

비가정지앙규(非家庭之仰窺)[가정에서 우러러 살피지 않았다면]

기산인지가식(豈散人之可識)[어찌 벼슬 버린 한가로운 사람이 알 수 있겠는가]

이선생지도학(伊先生之道學)[이 선생의 도학을]

오부득이용탁(吾不得以容託)[내가 의탁할 수는 없었지만]

유욕눌지격설(唯欲訥之格說)[오직 말에 어눌하고자 한다는 격언이]

뇌소시어아장(賴昭示於雅章)[아름다운 선생의 시에 밝게 보이네]

봉일거이불반(鳳一去而不返)[봉황은 한 번 떠나가 돌아오지 않으니]

엄사림지비상(儼士林之悲傷)[엄연히 사림의 슬픔일세]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동창(東倉)을 지나 삼족대의 주위를 둘러보고 김대유의 호방한 성품과 풍류, 넓은 도량과 학문을 회고하며 존모의 정을 표현하고 있다. 단순히 산수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기보다는 선현의 유적을 답사하며 숭모의 마음을 노래하는 내용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마지막 부분은 자신의 생애에 대한 회고와 다짐으로 끝맺고 있다.

여전성지후예(余全城之後裔)[나는 전성의 후예로]

세잠영어상승(世簪纓於相承)[대대로 높은 벼슬 이어 왔으나]

태기극어선조(泰旣極於先祖)[평안함은 선조에게서 이미 다하였고]

비불이어부흥(否不已於副興)[비색함은 후대에 이르러서도 그치지 않네]

고유락어향야(苦流落於鄕野)[괴로이 떠돌다 시골 들판에 떨어져]

작필부어전강(作匹夫於田壃)[밭두둑에서 농부가 되었네]

애조실호정훈(哀早失乎庭訓)[슬프다! 일찍 부친의 가르침을 잃어]

막지향지미방(邈指向之迷方)[아득히 지향함이 방향을 잃었네]

창약시이은은(愴若是以隱隱)[이와 같이 흐릿흐릿함이 안타깝지만]

심외기언미황(心畏忌焉未遑)[마음이 두려워하고 꺼려함이 겨를이 없네]

기수명지가구(豈修名之暇求)[어찌 명예를 닦음을 구할 겨를이 있겠는가]

공물외지동아(恐物外之動我)[외물이 나를 동요시킬까 두렵구나]

연지기지녹록(然志氣之碌碌)[그러나 뜻과 기개가 녹록하니]

긍사우지아가(肯師友之我可)[즐겨 스승과 벗이 나를 옳다고 여기리라]

단부동어유속(但不同於流俗)[다만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여]

피중구지온노(被衆口之慍怒)[뭇사람들의 화냄을 입었도다]

지불가호자명(知不可乎自明)[스스로 밝히는 것이 불가함을 아니]

조여지어동우(造余志於東宇)[동쪽 집에서 내 뜻을 이루려 하네]

비원인이고도(匪遠引以高蹈)[멀리 세속을 떠나 은거하지 않는다면]

거망리이모작(詎忘利以侮爵)[어찌 이익을 잊고 작록을 업신여기랴]

유강상지청풍(惟江上之淸風)[오직 강가의 맑은 바람과]

여산간지명월(與山間之明月)[산 사이의 밝은 달은]

이득지이위성(耳得之以爲聲)[귀로 들음에 소리가 되고]

목우지이성색(目寓之以成色)[눈으로 봄에 빛을 이루네]

혹능장질이납오(或能藏疾而納汚)[혹 나쁜 것을 감추고 더러운 것을 받아들이지만]

주감수여이비(疇敢隨余以非)[누가 감히 그릇된 것으로써 나를 따르게 하겠는가]

척연장부입어천지(斥然丈夫立於天地)[척연히 대장부처럼 천지 사이에 우뚝하게 서서]

임부비지지중(任賦畀之至重)[하늘이 부여한 지극히 무거운 짐을 맡는다네]

상대에 혁혁한 문벌을 자랑하던 가문이 자신의 대에 와서 침체되었다고 하여 가문의 성쇠와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 앞으로의 다짐으로 마무리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람을 통해 인지(仁智)의 즐거움을 체득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삶의 터전인 향토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특징]

경관을 형상화하는 데 있어 운문과 산문의 중간이라고 할 수 있는 부(賦)라는 양식으로 지어졌다는 것이 가장 주목된다. 특히 이기옥「운문산부」는 부로서는 상당히 장편에 속한다.

[의의와 평가]

이기옥은 호를 운문의 공암(孔巖)[구멍 바위]에서 자신의 호인 두암(竇巖)을 취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운문산에 대한 애호가 남다른 인물이었기 때문에 장편의 부를 지을 수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박하담의 부와 마찬가지로 16세기 당시 청도 재지 사족의 산수 문학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를 지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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