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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1844
한자 道州-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놀이/놀이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석대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놀이 개시 시기/일시 1779년 - 도주 줄다리기 개시
소멸 시기/일시 1948년 - 도주 줄다리기 중단
재현 시기/일시 1983년 - 도주 줄다리기 화양줄로 개칭하여 부활
재현 시기/일시 1997년 - 청도 도주 문화제에서 도주 줄다리기로 명칭 변경
놀이 장소 도주 줄다리기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성격 민속놀이
노는 시기 정월 대보름
관련 의례 행사 도주 문화제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에 줄을 당겨 승부를 겨루는 민속놀이.

[개설]

줄다리기는 한 고을이나 촌락이 동과 서, 남과 북으로 편을 갈라 마을의 남녀노소가 함께 줄을 당겨 승패를 다투던 민속놀이이다. 줄다리기를 통해 그 해의 흉과 복을 점치기도 했다. 도주 줄다리기는 고을 단위의 줄다리기로 그 규모가 매우 크고, 역사 또한 오래되었다. 도주줄, 영남줄, 읍내줄, 화양줄 등으로도 불렸다.

[연원]

도주 줄다리기 청도군 화양읍 주민 중심의 민속놀이로 화양읍 동상리서상리의 경계 지점인 강지 땅에서 이어져 왔다. 강지 땅은 청도읍성 북문 밖의 형장(刑場)이 있던 곳으로 비가 내리는 밤에 원귀들의 울부짖음이 들려와 1779년(정조 3년)에 줄다리기를 통해 지세를 누르고자 시작하게 되었다. 1781년(정조 5년)에는 참가 범위를 성 밖까지 확장하여 실시했고, 이후 골목 줄다리기가 성행하고 마을 단위의 줄다리기가 실시되었다. 도주 줄다리기는 18세기에는 도주줄, 19세기에는 영남줄, 20세기 초반에는 읍내줄이라 불렀으며 1983년부터는 화양줄이라 불렀다.

19세기에는 영남줄이라 하여 밀양, 창녕 등지에서도 많은 주민들이 참가해 전국적인 규모의 행사로 발전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의 민족 말살 정책으로 읍내줄로 그 세가 약해졌다.

이후 1948년부터 6·25 전쟁 등으로 중단되었다. 1983년 화양줄로 명칭을 변경하여 부활되었다. 1997년 청도 도주 문화제를 기점으로 줄다리기 행사를 청도 도주 줄다리기라 명명하고, 산동과 산서 지방으로 나누어 2만 5000명의 군민이 참여해 세계 최대 규모의 줄다리기 행사를 가졌다.

[놀이 도구 및 장소]

줄다리기의 줄은 짚단을 이용해 만드는데, 1858년(철종 9년)의 줄다리기에서 줄의 크기가 굵기는 42마름, 길이는 120보나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운집한 군중이 수만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볏짚을 모아 여러 가닥의 가닥 줄을 만들고, 가닥 줄을 모아 거대한 두 개의 암수 원줄을 만든다. 이 원줄에 목줄과 종줄, 가지줄을 묶고 도래목으로 암수 목줄을 꿰면 도주 줄다리기의 줄이 완성된다.

도주 줄다리기 에 사용한 줄은 총 10만 단의 짚단으로 1,200여 명이 동원되어 꼬박 5일 동안 제작했으며, 기본 줄의 직경은 1m를 넘었다고 한다. 2012년 현재 사용하는 줄은 청도군의 9개 읍·면에서 마을마다 짚을 꼬아 만들었다. 굵기 15㎝, 길이 80∼90m 가량의 가닥 줄 80여 개를 만든 후, 이 줄들을 다시 꼬아 굵기 50㎝, 길이 100m에 이르는 대형 원줄로 만들었다. 원줄 좌우로는 수십 개의 가지줄을 마련해 손으로 당길 수 있도록 했다.

원래 도주 줄다리기는 강지 땅에서 행해졌다. 그러나 1997년 제10회 도주 문화제에서 화양 줄다리기가 도주 줄다리기로 명명되면서 놀이 장소 또한 청도천변으로 바뀌었다.

[놀이 방법]

도주 줄다리기 는 골목 줄다리기를 시작으로 분위기가 고조되면 본격적인 준비를 거쳐 큰 줄다리기로 이어진다. 줄다리기를 위해 만든 줄을 옮긴 후 그 줄 머리에 도래라고 하는 고리를 만들고, 꽂대, 도래목 혹은 비녀목이라고 하는 통나무를 꽂아 암줄과 수줄을 연결한 후 동패[산동 지역]와 서패[산서 지역]로 나뉘어 줄을 당겨서 승부를 겨룬다.

전통적으로 줄다리기를 통해 그 해의 농사나 길흉을 점친다는 속신이 있었기 때문에 참가한 남녀노소는 사력을 다하며, 부녀자들은 치마에 돌을 안고 매달리기도 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줄다리기는 줄의 모양과 줄을 당기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상징에서 주술성을 내포하기도 하는데, 다산을 상징하는 동시에 풍년을 기원하는 농경 의례적 성격을 찾을 수 있다.

한편 줄다리기를 한 줄은 소의 사료로 최상품이라고 여겼고, 논에 뿌리면 풍년이 들고, 배에 실으면 만선(滿船)한다고 한다. 또 여성들이 줄을 가져가면 아들을 얻을 수 있다는 비방으로도 사용되었다.

청도군 매전면 동산 2리에서는 마을 줄다리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완성된 줄을 여자가 타넘지 못하도록 지키는 풍습이 있는데, 여자가 줄을 타 넘으면 부정을 타서 경기 도중에 줄이 끊어진다는 속신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임신하지 못하는 여자가 줄을 타 넘으면 바로 임신할 수 있다고 하여 남몰래 줄을 넘으려고 시도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현황]

청도군에서는 격년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날 도주 줄다리기를 실시하고 있다. 2010년에는 전국적인 구제역 파동으로 도주 줄다리기 행사가 시행되지 못했고, 2012년 2월 6일에 청도천 둔치에서 시행되었다.

도주 줄다리기 도주 줄다리기 전승 보존회에서 주관하며, 행사에 사용될 도주 줄은 2월 2일부터 청도천 공터에서 만들기 시작했다. 도주 줄다리기 전승 보전회 회원과 청도군 9개 읍·면의 주민 약 400여 명이 모여서 1월 말부터 줄을 만들었다. 짚을 꼬아 굵기 15㎝, 길이 80∼90m 가량의 가닥 줄 80개를 만들었다. 그 후 2월 2일부터 다시 청도천에 모여서 대형 원줄을 만들었다.

줄다리기 행사 당일에는 11시에 농악대와 깃발을 앞세운 ‘줄 나가기’ 시가지 행진을 했으며, 동서 진영으로 나뉘어 읍 지역을 한 바퀴 돌아서 온 후 청도천에 모여 암수 줄의 결합을 했다. 암수 줄 결합은 대형 크레인을 동원하며, 비녀를 지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오후 2시 동군[운문면, 매전면, 금천면, 청도읍]과 서군[이서면, 각남면, 각북면, 풍각면, 화양읍]으로 나뉘어 함성을 지른 후 경기를 펼쳤다. 경기를 마친 후 관광객들과 참가자들이 도주 줄을 끊어가기 위해 장사진을 이루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