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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황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911
한자 昌原黃氏
분야 성씨·인물/ 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강래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창원 황씨 본관 - 경상남도 창원시
입향지 창원 황씨 입향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송읍리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창원 황씨 집성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송읍리|청도읍 고수리지도보기
성씨 시조 황충준
입향 시조 황도흥

[정의]

황충준(黃忠俊)을 시조로 하고 황도흥(黃道興)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연원]

창원 황씨(昌原黃氏)의 시조는 고려 성종 때 문하시중을 지낸 황충준(黃忠俊)이다. 창원 황씨는 황충준을 시조로 하는 시중공파(侍中公派) 외에 고려 충정왕 때 문하평장사를 지낸 황석기(黃石奇)를 시조로 하는 공희공파(恭僖公派), 고려 시대에 호장을 지낸 황양충(黃亮沖)을 시조로 하는 호장공파(戶長公派)로 나뉜다.

황충준의 후손으로 고려 후기 정토장군을 역임한 황신(黃信)을 기세조(起世祖)는 치고 있는데, 그것은 황충준과 황신 사이의 세계(世系)는 분명하지 않는 반면에 황신 이후의 세계는 분명하기 때문이다. 황신의 7세손인 황순경(黃舜卿)에게는 여섯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둘째 아들인 황림(黃琳)은 조선 선조대에 이조 판서를 역임하면서 의창군(義昌君)에 봉해졌다. 따라서 황림으로부터 파가 갈린 황씨를 시중공파 안에서 의창군파라 부른다.

창원 황씨는 조선 시대에 문과 급제자 78명·공신 2명·정승 1명을 배출했는데, 시중공파에서는 숙종 때 부제학과 호조 참판을 지낸 황재(黃梓), 형조 판서를 지낸 황인검(黃仁儉), 영조의 딸 화유 옹주(和柔翁主)와 혼인하여 부마가 된 황인점(黃仁點) 삼부자가 특히 유명하다. 공희공파에서는 조선 성종 때 공조 판서를 지낸 황형(黃衡), 황형의 아들인 대사간 황기(黃琦), 공조 및 호조 판서를 지낸 황신(黃愼), 학자로 유명했던 황근중(黃謹中)·황경중(黃敬中) 형제가 가문을 빛냈다. 호장공파에서는 임진왜란 때 동지돈녕부사가 된 황사우(黃士祐), 순조 때 문장과 글씨로 이름을 날린 황기천(黃基天)고종 때 명의 황필수(黃泌秀) 등이 유명하다.

[입향 경위]

1700년대 중엽에 황도흥(黃道興)이 창원에서 청도군 청도읍 송읍리에 입향하여 정착하였다.

[현황]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청도군 내에 123가구 364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2012년 현재 청도읍 송읍리에 15가구가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이용자 의견
나** 黃氏의 先代 祖上은   반드시 아래에서 찾아야 합니다.우리나라 黃氏先系黃瓊-黃勝-黃周亮(983~1043년)-黃靖-黃抗之-黃宗慤-黃忠現-黃榮-黃玩-黃瑩-黃仲寶-黃兪顯-黃元道-黃君裳-黃觀 -拓俊京의妻齊安黃氏-黃周瞻-黃麟-黃公遇-黃龍弼-黃謙-黃文富-黃文莊-黃克中-黃公石-黃元哲-黃大都-黃吉茂-黃陶(安)-黃元瑞-黃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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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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