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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122
한자 松邑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송읍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윤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청도군 대성면 송읍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40년 - 청도군 대성면 송읍동에서 청도군 청도면 송읍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49년 - 청도군 청도면 송읍동에서 청도군 청도읍 송읍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8년 - 청도군 청도읍 송읍동에서 청도군 청도읍 송읍리로 개칭
성격 법정리
면적 1.95㎢
가구수 102가구
인구[남,여] 201명[남자 99명, 여자 102명]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예전과 크게 변화되지 않은 송읍리는 안송읍과 바깥송읍으로 나누어져 있다. 중앙 고속 도로국도 25호선 지나고, 청도 인터체인지를 통해 두 도로가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이다.

[명칭 유래]

송읍은 솥골이 변하여 속골이라고 했다고 한다. 오랜 옛날에 소나무 숲이 있어서 솔골이라고 했다 하며, 다른 일설에는 솥을 만들던 장소라고 해서 솥골이라고 했다는 말이 있지만 그게 언제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또한 조선 시대에 흉년이 들면 이곳에서 솥을 걸어 놓고 죽을 끓여 구휼을 했다고 해서 솥걸이라고도 한다는 말이 전해지기도 하고, 1905년 철도가 생기면서 철둑 안에 있다고 해서 속골이라고 했다고 하기도 한다.

[형성 및 변천]

청도군 용산면에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송읍동이라 하여 대성면에 편입되었다. 1940년 대성면이 청도면으로 개명하면서 청도면 송읍동이 되었고, 1949년 청도면이 청도읍으로 승격되면서 청도읍 송읍리가 되었다. 1989년 송읍동송읍리로 개칭하였다.

송읍리는 선사시대부터 주거지로 쓰였다. 이러한 사실은 신 대구∼부산 간 고속 도로 공사 시 발굴조사를 할 때에 원삼국을 비롯한 전근대의 고분군이 있는 것을 보고 알 수 있다. 조선말에 만들어진 지도에는 송읍 사창(松邑社倉)이 있었고 또한 뒷산에는 1600년대부터 남산봉수대를 옮겨와 봉수대가 없어진 시기인 1891년 전국 봉수대의 역할이 폐지될 때 까지 존재했던 곳이다. 바깥송읍 앞에는 지금도 큰 느티나무 정자가 있어 도로 확장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옛날부터 마을 앞에 큰 나무는 당산나무로 지역민의 수호신으로 모셔왔고 지금도 잘 베어내려고 하지 않아서 남아 있는 곳이 많다.

[자연 환경]

마을 뒤로는 주구산이 위치하며 앞으로는 다로천이 흐르고 있다. 안 송읍과 뒷산에 봉수대가 있었던 바깥 송읍 사이를 남북으로 길게 트여 있는 다로천을 따라 긴 경작지를 가지고 있다. 북쪽으로는 무듬실과 이어져 있고 남쪽으로는 청도천이 넓게 막아서고 있다.

[현황]

2012년 6월 현재 면적 1.95㎢이며, 총 102가구에 201명[남자 99명, 여자 10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과 동남쪽은 청도읍 원정리, 서쪽은 화양읍 소라리, 남서쪽은 청도읍 고수리·화양읍 범곡리, 북쪽으로는 청도읍 무등리·화양읍 진라리가 경계를 접하고 있다.

용각산 줄기 자락마다 비탈 밭을 일구어 복숭아와 감나무를 식재하고 있다. 안 송읍과 바깥 송읍 사이로 경부선 철도와 국도 25호선새마을로가 지나며, 두 도로는 청도 인터체인지를 통해 연결된다. 안 송읍은 경부선 철도의 둑으로 인해 고립되고 바깥 송읍은 국도 25호선이 마을 앞을 가로 막아 산 쪽으로 몰려 있다.

청도의 치안을 담당하는 청도 경찰서가 있고 예비군 관리 대대가 오래전부터 주둔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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