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8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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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綾城 具氏 |
분야 | 성씨·인물/ 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강래업 |
본관 | 능성 구씨 본관 -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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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능성 구씨 입향지 -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금촌리
![]() |
세거|집성지 | 능성 구씨 집성지 -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송서 1리|이서면 고철리![]() |
성씨 시조 | 구존유 |
입향 시조 | 구여중|구응징 |
구존유(具存裕)를 시조로 하고 구여중(具汝重), 구응징(具應徵)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능성 구씨의 시조는 구존유(具存裕)이다. 1224년 송나라 주희(朱熹)의 증손인 주잠(朱潛)이 칠학사(七學士)와 더불어 금성(錦城)[현 전라남도 나주시]으로 망명해 왔다. 그 뒤 주잠은 원나라의 추적을 피해 구적덕(具積德)으로 이름을 고쳐 능주에 숨어 지냈고, 구존유는 은거하던 주잠의 딸과 혼인하여 능성(綾城)[현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에 세거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구존유의 후손들이 능성을 구씨의 관향(貫鄕)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후 능성 구씨(綾城具氏)는 구존유의 후손들이 고려 조정에 진출하여 가문의 명성을 높였다. 평장사(平章事) 구민첨(具民瞻)·문하좌정승(門下左政丞) 구연(具珚)·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 구예(具藝)·전리 판서(典理判書) 구영검(具榮儉)·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 구위(具褘)[또는 구의(具禕)]·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구흥(具興)·공조 전서(工曹典書) 구의(具義)가 특히 유명하다. 구존유의 7세손인 문절공(文節公) 구홍(具鴻)은 조선 태조 이성계 개국에 협력하지 않고 은둔하여 고려 왕조에 대한 절의를 지킨 인물이다.
1600년대 초에 구여중(具汝重)이 밀양에서 청도군 풍각면 송서리로 이주하였고, 1600년대 중엽 구응징(具應徵)이 의성에서 청도군 이서면 고철리로 이주한 뒤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두 곳 모두 정확한 입향 경위는 알 수가 없다.
2012년 현재 풍각면 송서리에 15가구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청도군 내에 87가구 260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