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795
한자 雲門寺浮屠群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길 503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진관스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운문사 부도 떼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산169-1지도보기
성격 부도군
양식 석조 건축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에 있는 부도 떼.

[개설]

운문사 부도 떼는 운문사 부도전[승탑원]에 모여 있다. 부도전운문사에 주석했던 고승 대덕의 탑과 탑비를 모셔 놓은 구역으로 총 16기의 석조물이 있다. 이 가운데 명암당 석제 대사의 탑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1658년에 조성되었으며, 금파당 대연 승려 탑비가 1915년으로 가장 늦게 봉안되었다. 따라서 부도전은 17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운문사에 주석한 승려들의 묘역이다.

[건립 경위]

부도는 왼쪽부터 성파당 현척(聖坡堂 賢陟)·도봉당 유문(道峯堂 有聞)·반운당(伴雲堂), 한 기 건너서 설송당 연초(雪松堂 演初)·명암당 석제(銘巖堂 釋霽)·퇴암당 자여(退庵堂 自如)·진계당 신서(晋溪堂 伸瑞)·대허당 남붕(大虛堂 南鵬)의 것이다. 반운당과 대허당의 부도는 탑신에 당호가 새겨져 있다.

무명 부도와 1658년(효종 9)에 세운 명암당 부도를 제외한 다른 부도는 모두 영조정조 연간(1725∼1800)에 세워졌다. 설송당과 대허당은 밀양 표충사를 중창한 승려이다. 설송당은 학문이 깊어 선교(禪敎)에 통달했으며, 운문사를 중창하기도 했다.

[위치]

운문사 부도는 청신암에서 내원암 가는 호젓한 숲길 가에 있다. 부도는 모두 9기로 이 중 6기는 앞에 탑비를 두고 있어 주인을 알 수 있다. 탑비 1기는 주인을 알 수 없다.

[형태]

부도의 양식을 살펴보면 기단부 위에 탑신부를 올려놓은 다음 옥개석을 마련한 경우와 옥개석을 마련하지 않은 경우로 대별된다. 옥개석이 있는 경우는 대부분 몸돌이 구형(球形)이지만 옥개석이 없는 경우 석종(石鐘) 형태로 조성했다. 옥개석이 있는 경우에는 그 위에 상륜부를 마련하고 있으나 별다른 표현 없이 보주를 얹었는데, 보주마저도 구슬 형태가 아니라 대부분 원통형이다. 탑비는 받침돌 위에 비신을 세우되 상부에 머릿돌을 놓지 않은 상태로 구형 또는 반원형으로 마감했다.

[현황]

부도는 대부분 상·중·하대석 또는 상·하대석 위에 둥근 몸돌을 얹고 옥개석을 올려놓은 형식이다. 다만 반운당과 주인을 알 수 없는 부도는 석종형의 탑신만을, 퇴암당은 4각 탑신을 올려놓은 것이 특징이다. 또 성파당 부도에는 꽃과 연밥 무늬가 탑신과 하대석에 새겨져 있고, 대허당 부도는 상륜부가 긴 것이 눈에 띤다. 명암당 부도는 다른 부도와 달리 심하게 훼손되었다.

부도전에 자리한 탑과 탑비는 다음과 같다. 부종수교명암당석대사탑과 탑비[1658], 연파당대사탑[1704년], 표충건사주태허대사남붕탑과 탑비[1717], 퇴암당대사자여탑[1719], 반운당탑[1742], 자도대선사양종정사설송당연초탑과 탑비[1750]. 종정진계당대사신서탑과 탑비[1780], 양종정사도봉당대사유문탑과 탑비[1800] 대선사긍파당대연사리부도비[1915년]이다.

[의의와 평가]

탑과 탑비를 통틀어 신라나 고려 시대 부도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함은 없으며, 전체적으로 소박한 형태의 조선 후기의 양식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