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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525
한자 排字禮部韻略板木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679년연표보기 - 『배자예부 운략』 판목 제작
문화재 지정 일시 1987년 7월 16일연표보기 - 『배자예부 운략』 판목 보물 제917호에 지정
현 소장처 『배자예부 운략』 판목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퇴계로 1997
원소재지 『배자예부 운략』 판목 -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335지도보기
성격 책판
재질 나무
크기(높이,길이,너비) 60.1㎝[너비]|20.7㎝[길이]|2.8㎝[두께]
소유자 선암 서원
관리자 한국 국학 진흥원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제917호

[정의]

조선 후기에 청도 지역에서 판각된 『배자예부 운략』의 신·구 판목.

[개설]

『예부 운략(禮部 韻略)』은 학문을 연구하는 기초 사전으로서 송(宋)·원(元)대부터 우리나라에 수입해온 음운 고사 전류(音韻 考辭 典類)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예부 운략』은 1300년(충열왕 26)에 발행한 해계 서원판(海溪 書院版)이다. 그러나 이는 중국에서 간행된 판목으로 추측되고, 1524년(중종 19)에 황해도에서 『예부 운략(禮部韻略)』을 간행하였다고 전해오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1464년(세조 10)에 방촌 황희(黃喜)의 손자 황종형(黃從兄)이 청도 군수로 있을 때, 김맹(金孟)[1410∼1483]의 글씨로 만든 도주본(道州本)[도주는 청도군의 옛 지명임] 『예부 운략(禮部韻略)』이 청도 적천사(磧川寺)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1615년에 손기양(孫起陽)이 쓴 『예부 운략』 서문(序文)에 의하면, 조선의 전란으로 많은 공사(公私) 서적들이 병화(兵火)로 없어져서 선비들이 책을 구할 수가 없게 되자, 어렵사리 예부(禮部)의 운서(韻書) 중 잔편(殘編)이 남은 것 가운데 가장 좋은 선본(善本)을 구하여 인출하게 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즉 임진왜란 후 청도군에 살던 제우당(悌友堂) 박경전(朴慶傳)국헌(菊軒) 박경윤(朴慶胤) 형제가 충청북도 영동에서 1573년(선조 6)에 간행된 선본인 영동 신간본(永同 新刊本)을 구해 와서 1615년에 이 책을 다시 인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동에서 구해온 원본은 청도의 황종형(黃從兄) 군수 때 만들어진 천순본(天順本)[1457∼1464] 『예부 운략』의 복각본(復刻本)이다. 따라서 선암 서원(仙巖書院)에 소장되어 있는 만력본(萬曆本) 『예부 운략』은 청도에서 세조 때 간행된 천순본(天順本)의 복각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1615년(광해군 7)에 복각한 만력판(萬曆板)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현재 6장[12매] 만이 전해지고 있으며, 1679년(숙종 5)에 박동부(朴東傅)에 의해 다시 만력본을 복각한 강희판(康熙板) 76장[152매]이 판각되어, 이후 5권 2책으로 간행되어 유포되었다.

이 강희판은 결판(缺板)이 없이 온전하게 선암 서원 장판각에 보관되어 오다가, 1987년 7월 16일에 보물 제917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2005년부터 경상북도 안동의 한국 국학 진흥원에 기탁되어 보관중이다.

[형태]

선암 서원에 소장된 『배자예부 운략(排字禮部 韻略)』 판목은 1615년에 만들어진 구판[만력판] 6장[12매]과 1679년에 만들어진 신판[강희판] 76장[152매] 등 총 82장[164매]이 있다.

이들 판목의 형태 서지를 보면, 구판은 판심제가 없으며, 마구리를 포함하여 가로 52.9㎝, 세로 21.5㎝, 두께 1.8㎝이다. 광곽은 사주단변(四周單邊)으로 계선(界線)이 있고, 어미는 내향흑어미(內向黑魚尾)이다. 반엽의 행관(行款)은 12행에 자 수는 부정(不定)이며, 상하 비선은 중봉흑선(中峰黑線)이다. 판목은 권1·2·3·5의 판목 각 1장씩과 정민도(丁敏道)가 1615년에 지은 발문 판목 1장, 권·장차를 확인할 수 없는 판목 1장 등 총 6장[12매]이다.

신판 판목의 판심제는 없으며, 크기는 너비 60.1㎝, 길이 20.7㎝, 두께 2.8㎝이다. 광곽은 사주단변(四周單邊)으로 계선(界線)이 있고, 어미는 없다. 반엽의 행관(行款)은 12행에 자 수는 부정(不定)이며, 상하 비선은 흑구(黑口)이다. 『배자예부 운략』은 서(序), 본문(本文), 옥편(玉篇), 발(跋)의 4개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은 손기양(孫起養)이, 발문은 정민도, 박숙(朴琡)이 1615년에 지었다. 판목은 서문 1장, 본문에 해당하는 상평성(上平聲) 11장, 하평성(下平聲) 9장, 상거성동 음유집(上去聲同 音類集) 22장, 입성(入聲) 9장과 옥편(玉篇) 목록 2장, 본문 22장으로 되어 있다. 발문은 구판을 그대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징]

선암 서원에 소장되어 있던 『배자예부 운략』 판목은 구판과 신판이 있다. 구판은 박경전(朴慶傳)박경윤(朴慶胤) 형제가 1615년(광해군 7)에 복각한 만력판(萬曆板)이다. 현재 6장[12매]이 전해지고 있는데, 나머지 판목이 사라진 이유는 알 수 없다. 신판은 1679년(숙종 5)에 박동부(朴東傅)가 만력본을 복각하여 만든 강희판(康熙板)이다. 모두 76장[152매]이 판각되어, 이후 5권 2책으로 간행되어 유포되었다. 1987년 보물 지정 당시에는 82장[162매]이었는데, 이는 신·구판을 합한 수였다.

구판인 만력판은 서문과 권4는 한 장도 남아 있지 않고, 본문 권1·권2·권3·권5·발문이 각 1장씩 남아 있다. 이외에 권·장차가 확인 불가능한 판목이 1장 있다. 신판인 강희판은 서문과 본문인 권1∼권4, 옥편인 권5, 발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은 1장[1∼2쪽]이 없는데, 권·장차가 확인이 안 되는 판목이 그것으로 추정된다. 발문 역시 없는데 구판에 발문으로 대처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발문을 작성한 정민도(丁敏道)박숙(朴琡)이 16세기의 인물들인 것에서도 확인된다.

[의의와 평가]

『예부 운략』은 현종에서 숙종 연간에 『삼운통고(三韻通考)』가 보급되기까지 선비들의 필수 자전(字典)으로 쓰여 왔던 책으로 이 판목은 매우 희귀한 판목에 속한다.

강희판은 만력판을 다시 복간한 것인데 한 장의 결손도 없이 고스란히 보존된 유일한 것으로 그 가치가 매우 크다. 강희판은 5권 2책으로 간행되어 유포되었다. 이들 판목들은 조선조 서지학, 특히 판각 연구 및 국어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간주된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