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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515
한자 淸道雲門寺石造如來坐像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불상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길 264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진관스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63년 1월 21일연표보기 - 청도 운문사 석조 여래 좌상 보물 제317호로 지정
현 소장처 운문사 석조 여래 좌상 -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1789지도보기
성격 석조 여래 좌상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317호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에 있는 석조 여래 좌상.

[개설]

운문사 작압전(鵲鴨展)은 보량 국사가 초창하고 원응 국사가 제2 중창을 할 때 건립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그 후 재건되었다. 작압전에는 보물 제317호로 지정된 청도 운문사 석조 여래 좌상(淸道 雲門寺 石造 如來 坐像)이 모셔져 있는데, 조성 연대는 신라 후기로 추정하고 있다.

청도 운문사 석조 여래 좌상 옆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 신장으로 사천왕(四天王)인 동방 지국천왕(東方 持國天王), 남방 증장천왕(南方 增長天王), 서방 광목천왕(西方 廣目天王), 북방 다문천왕(北方 多聞天王)이 모셔져 있다.

[형태]

높이 약 63㎝의 작은 불상으로 광배와 대좌를 두루 갖추고 있다. 대좌는 무심코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팔각형의 대좌인 것 같지만 다른 형식이다. 하대·중대·상대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대석은 좌우로 긴 육각형의 형태로 18개의 연꽃잎이 새겨져 있다. 그 위에 있는 중대석 또한 육각형이다.

상재석은 타원형이고, 14개의 연꽃이 표현되어 있다. 좌대는 전체적인 모습은 별 어려움 없이 볼 수 있으나, 하대석 일부와 중대석의 많은 부분에 석재가 떨어져나간 흔적이 보인다.

[특징]

불상은 양쪽 어깨에 옷을 걸치고 있는 통견의 형식이다. 수인은 왼손의 손바닥을 펴서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올려놓고, 오른손은 무릎 아래로 늘어뜨린 형태의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다. 팔이 짧은 듯 왼손의 손바닥은 배꼽 중앙에 이르지 못하고, 오른손은 작고 두툼하여 길게 늘어뜨리지 못하고 그저 무릎에 얹어 놓았다.

부처의 얼굴을 보면 눈썹이 가늘고 길게 표현되어 있고 눈도 작은데, 눈썹과 눈 사이가 제법 벌어진 것이 특징이다. 작은 눈, 작은 입술에 코가 다소 크게 표현되었으며, 머리에는 육계와 나발의 표현이 뚜렷하다. 전체적으로 보면 신체에 호분이 두텁게 칠해져 있어 윤곽이 명확하지 않고 세밀한 조각 선을 살피기 어려우며, 신체에 비해 얼굴이 크게 묘사되었다.

광배는 두광과 신광이 표현되어 있고, 대좌와 신체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무늬의 굴곡이 뚜렷한 편이다. 광배의 가장자리에는 불꽃 무늬를 조각하여 부처의 몸에서 뿜어 나오는 빛을 형상화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청도 운문사 석조 여래 좌상에서는 다량의 복장물이 발견되었는데, 그 가운데 865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납세제 사리 호와 통일 신라 때의 사리 병, 옥구슬 등이 포함되어 있어 석조 여래 좌상의 조성 시기가 9세기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 밖에도 15세기 전반기에 통용되었던 영락통보(永樂通寶)와 1642년 제작된 숭덕 7년명 사리 합개(崇德 7年銘 舍利 盒蓋)가 출토되었다. 아마 불상을 보수하면서 새로운 복장물을 넣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복장이란 형상화된 불상에 갖가지 영험한 물건을 집어넣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며, 이때 불상의 몸속에 넣어지는 물건 자체도 복장이라 일컫는다. 주로 칠보, 오곡, 발원문, 다라니 등을 후령통에 넣어 복장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운문사 석조 여래 좌상에서 출토된 복장은 사리장 엄구가 주를 이루고 있다. 전신사리를 봉안하여 석조 여래 좌상의 영험함을 높이고자 했던 당시 승려들의 정신을 살펴볼 수 있다.

[참고문헌]
  • 윤기영·심효섭, 『운문사』-한국의 명찰 10(대한 불교 진흥원,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