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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374
한자 金谷里-
분야 지리/동식물
유형 지명/군락, 서식지 및 철새 도래지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금곡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원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금곡리 마을 숲 -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금곡리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금곡리에 있는 숲.

[개설]

금곡리에는 1600년대 말 밀양 변씨가 처음 들어오고 그 다음에는 김해 김씨, 평택 임씨 순으로 입향하였다. 대구에서 입향한 평택 임씨는 풍수지리적으로 물이 바로 빠져나가는 것은 마을의 복이 빠져나가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 마을의 어귀에 숲을 조성하였다. ‘쑤’라고 하는 이 숲은 느티나무와 팽나무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냇물이 마을을 돌아서 나가도록 보이도록 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금곡리는 멀리 비슬산으로부터 뻗어 온 산줄기로 둘러싸여 안온하다. 그러나 마을 앞은 여러 골짜기에서 흘러든 물이 모여 큰 내를, 이루고 이로 인해 허전하게 뚫려 있다. 풍수지리와 같은 전통 지식 체계에서는 ‘마을 입구에서 동네가 보이면 좋지 않다.’라고 여겼기 때문에 지형상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숲을 많이 조성했다. 금곡리에서도 재앙이 빈번히 발생했으나, 나무를 많이 심어 이 나무가 자란 다음부터는 젊은이들이 죽는 흉사와 재해가 없어졌을 뿐 아니라 마을 전체가 화평하고 부유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설명으로는 마을 북쪽에 있는 옥녀봉이 선녀가 거문고를 타는 형국이고, 마을 앞의 골이 거문고 줄이라고 본다. 이에 따르면 마을 숲은 거문고 줄을 매어두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금곡리 마을 숲은 중앙 행정과 연계되어 잘 보존된 것이다. 『청도 군지』에서는 금곡리 마을 숲이 조선 시대 역원 제도에 따라 이정(里程) 표시로 10리마다 작은 도랑을, 30리마다 큰 도랑을 만들고 나무를 심었을 때 조성하였다고 소개하고 있다.

[생물학적 특성]

금곡리 마을 숲은 수령이 300∼400년 된 느티나무와 팽나무 20여 그루와 일제 강점기 때 베어가고 남은 그루터기에서 돋아난 어린 후계목들이 숲을 이루며 함께 자라고 있다. 높이는 12∼18m, 가슴 높이 지름은 30∼100㎝ 정도이다. 전통적으로 마을 사람들의 삶과 관련하여 마을 주변에 조성되어 온 숲이다.

[자연 환경]

금곡리는 갑을령(甲乙嶺)∼마치(馬峙)비슬산 능선 태령으로 이어지는 지역에 있는 마을이다. 6·25 전쟁 때 창녕 전투의 보급로로 혁혁한 공로를 한 도로가 마을 앞을 지나서 마치령에 이어지고 있다. 동네 입구에 있는 금곡리 마을 숲은 인위적인 것으로 풍수지리적으로 금곡동·화산동의 지령(地靈)의 유서(流鼠)를 막고 역원 제도 하에서 역과 원의 이정 표시로서 심은 나무를 마을 주민들이 가꾼 것이다.

[현황]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국도 20호선을 따라 청도로 가는 길에 비티재를 넘어 평지로 들어서면 작은 마을과 함께 오래된 느티나무로 이루어진 숲이 좌우에 늘어서 있다. 이 마을이 바로 금곡리이고, 그 앞에 있는 숲은 청도 사람들이 금곡 숲으로 부르는 금곡리 마을 숲이다. 지역 주민들은 이 숲의 잎이 일제히 피어나면 그 해 농사가 풍년이고, 불규칙적으로 피면 흉년이 온다고 믿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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