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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163
한자 日谷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일곡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윤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청도군 각남면 일곡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 청도군 각남면 일곡동에서 청도군 각남면 일곡리로 개칭
성격 법정리
면적 1.21㎢
가구수 40가구
인구[남,여] 65명[남자 32명, 여자 33명]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화리와 같은 계곡에 있는 일곡리화리보다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이다. 얼핏 보기에는 화리와 떨어져 있지 않은 것 같아서 화리일곡리를 가르기가 쉽지 않다.

[명칭 유래]

일곡리(日谷里)는 낮실 마을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낮실이라는 우리말을 한문으로 쓰면서 일곡(日谷)이라고 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마을이 동향이라 아침 첫 햇살에 온 마을이 햇빛을 받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청도군 내서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일곡동이라 하고 각남면에 편입되었으며, 1988년 일곡동에서 일곡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일곡리이서국의 한 부분이라고 전하고 있으며, 신라 때와 고려 때의 일은 전혀 알 수가 없다. 경주 최씨의 집성촌으로 경주 최씨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전한다. 이 마을에 처음 정착한 경산(耕山) 최여준(崔汝峻)임진왜란 때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있음을 애타하며 대구의 선비였던 손처눌(孫處訥)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켜, 청도 의병 박경신 등과 합세하여 왜적을 물리쳤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최여준일곡리에 정착하게 되었다.

[자연 환경]

오산(鰲山)[남산]에서 내려온 지맥이 일곡리 끝에서 낙맥을 지으면서 무학산(舞鶴山)[독뫼] 꽁지 부분에 마을을 이루고 있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개울도 크지 않고 경작지도 대부분 밭이 전부이다. 화리와 혼동될 만큼 붙어 있지만, 화리는 골짜기가 넓고, 일곡리는 좁은 편이다.

[현황]

일곡은 2012년 7월 현재 면적은 1.21㎢이며, 총 40가구에 65명[남자 32명, 여자 3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각남면 화리, 서쪽과 북쪽은 각남면 구곡리, 남쪽은 각남면 사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각남면에서는 가장 적은 면적을 가지고 있으며, 경제적 수입은 과수에 의존하고 있다. 구곡리에서 일곡리를 거쳐 화리로 가는 농로가 있어 동서로 통하는 통로가 된다.

고운 최치원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고 경산 최여준의 효자비가 있다. 신라 말의 석학인 최치원의 영정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일제 강점기 때이다. 최치원의 영정은 지리산 쌍계사본과 가야산 해인사본이 있는데 가야산 해인사 본을 현재 이곳으로 모셔와 봉안하고 있다. 원래 해인사 나한전 나한의 탱화 속에 섞여 있었던 것인데 항일 운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쫓겨서 숨어다니다 해인사에서 유숙을 하던 이 마을 출신 최한영이 해인사 스님에게 우리 선조의 초상인데 우리가 모시겠다 하고 이곳으로 옮겨온 것으로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166호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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