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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154
한자 柳等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윤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청도군 화양면 유등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79년 - 청도군 화양면 유등동에서 청도군 화양읍 유등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8년 - 청도군 화양면 유등동에서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로 개칭
성격 법정리
면적 6.42㎢
가구수 263가구
인구[남,여] 574명[남자 281명, 여자 293명]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버드실, 이슬미, 안골, 오부실 등의 자연 마을이 있으며, 청도 팔경 중 하나인 유호 연지가 위치한 곳이다.

[명칭 유래]

유등리는 순수한 우리말로 만들어진 동명이 대부분이다. 버드실로 불리는 유등곡리는 읍치에서 서북쪽이라 방향을 따라 서[酉]로 이름을 붙였다가 유(柳)로 고쳐진 것이라고 한다. 버드실에서 이슬미나 오부실로 가는 나지막한 고개가 닭구멕이다. 닭구멕이란 닭의 목이라는 청도 지방 말이다. 마을 앞산은 봉란산이고 산등은 알뫼뜽이다. 이슬미는 오부실 앞의 한내강[청도천]이 풍각면에서 각남면으로 곧게 내려오다가 질매 끝에서 한번 굽이치고 이슬미에서 아주 많이 구부러진 곳이다. 용이 못된 이무기를 이슬이라 하는데, 이슬이 살고 있는 곳이라 하여 이슬미라고 한다. 오부실 또는 오화곡은 골짜기가 오목하여서 오목실이 오부실로 바뀌었다고 전한다. 안골과 띠골은 골짜기 안에 깊숙이 들어 앉아 있는 마을이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는 유등곡리라 하여 차읍면에 속했으며, 1914년 행정 개편 통폐합 당시 유등동이라 하여, 상읍면과 차북면을 합한 화양면에 이속되었다. 이후 1979년 화양면화양읍으로 승격되면서 화양읍 유등동이 되었고, 1988년 유등동에서 유등리로 이름을 바꾸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조선 초기 이 마을에 정착한 흥해인 최자순(崔自淳)이 마을 앞에 신라 시대부터 있었던 못을 넓히고 정자를 만들고 연꽃을 심은 것이 시초라고 한다. 최자순은 무오사화로 연루되어 피난을 다니던 고성인 이육(李育)을 사위로 삼으면서부터 이 마을이 알려지게 되었다. 최자순과 남매지간이 된 김해인 김기손(金驥孫)모헌 이육이 관련되어 유곡(酉谷)이라 했는데 유곡(柳谷)으로 표기되면서 버드실로 알려지기도 했다.

[자연 환경]

용각산에서 흘러온 한 줄기의 산이 이서면 대곡리칠곡리를 거쳐 소라리에서 멎는다. 그 등골에 양원리와 등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생긴 펑퍼짐한 골짜기에 유등리가 자리 잡고 있다. 앞에는 넓은 들을 이루고 있고, 골짜기 곳곳에도 다랑논을 만들어 경작을 하고 있다. 또한 양지바르고 완만한 경사를 가진 산에는 복숭아와 감나무를 심어 놓았다.

[현황]

2012년 7월 현재 면적은 6.42㎢이며, 총 263가구에 574명[남자 281명, 여자 29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화양읍 고평리, 서쪽은 이서면 양원리·고철리·화양읍 토평리, 남쪽은 화양읍 서상리·합천리·각남면 칠성리, 북쪽은 화양읍 삼신리·이서면 칠곡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가장 중심이 되는 마을인 버드실을 비롯하여 이슬미, 안골, 오부실, 닭구멕 등이 있다.

마을 서쪽 편에는 북에서 남으로 양원 삼거리에서 서상 사거리로 이어지는 도로가 나 있다. 청도 팔경 중 하나인 유호 연지에 7월부터 연꽃이 피면 인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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