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0693
한자 琴師夏
영어공식명칭 Geum Saha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강원도 영월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한성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지 영월 - 강원도 영월군
거주|이주지 주천 - 영월군 주천면
성격 효자
성별 남성
본관 봉화(奉化)

[정의]

조선 후기 강원도 영월 출신의 효자.

[가계]

금사하(琴師夏)[?~?]의 본관은 봉화(奉化)이며, 할아버지는 금양정(琴養正)이다. 아버지는 금용성(琴用成)이고, 동생은 금사주(琴師周)이다.

[활동 사항]

금사하는 영월에서 태어나 숙종(肅宗) 때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평소 부모를 극진히 섬겨 효자로 이름이 높았다. 어느 겨울날 어머니가 병이 들어서 생선을 먹고 싶어 하자 금사하는 구할 수가 없어서 냇가를 따라가며 울부짖었다. 그때 빙어(氷魚)가 냇가로 튀어나와 어머니께 올려 먹게 하자 병세에 차도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어머니의 약을 지으러 갈 때 강물이 불어나 건너지를 못하자 호랑이가 나타나 금사하를 등에 태우고 강을 건넜다고 한다.

1720년에 숙종이 승하하여 국상(國喪)이 있자 금사하는 동생 금사주와 함께 주천면의 남산(南山)에 여막을 짓고 3년 동안 여막살이를 하였는데, 금사하를 등에 태우고 강믈 건넜던 호랑이도 여막을 지켰다고 한다. 이에 사람들이 금사하와 금사주 형제를 쌍효(雙孝) 또는 금쌍효(琴雙孝)라고 일컬었다.

[묘소]

금사하가 사망한 뒤에 여막을 지키던 호랑이도 여막 터에 와서 죽으니, 호랑이를 여막 터에 묻어 주었다고 한다. 영월 지역의 사림(士林)이 금사하의 무덤과 여막을 지켰던 호랑이의 무덤을 의호총(義虎塚)이라고 하였으며, 무덤에 의호총비(義虎塚碑)를 세워 주었다. 사람들은 금사하가 여막을 짓고 살던 주천면의 남산을 금산(琴山)이라 칭하기도 하였으며, 현재 주천면 신일리에는 ‘의호총’이 남아 있다.

[상훈과 추모]

금사하의 효행을 기려 조정에서 부역과 조세 등을 면제하여 주는 급복(給復) 문서를 내렸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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