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총선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0568
한자 五十總選擧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강원도 영월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용철

[정의]

1948년 5월 10일 진행된 국회의원 선거.

[개설]

5·10총선거(五·十總選擧)는 1948년 5월 10일 유엔 감시하에 국회의원을 선출하고자 강원도 영월군을 포함하여 남한에서만 진행된 국회의원 선거이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남한 내 좌우익의 대결은 점차 심각해지고 있었다. 이 시기 남한에서는 미군정을 거쳐 남조선과도정부가 들어섰고, 여운형 등에 의하여 좌우합작운동까지 추진되었지만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에 미소공동위원회까지 결렬되자 미국은 한국 문제를 유엔에 상정하였다.

이에 유엔에서는 유엔한국임시위원회를 구성하고 총회의 결의에 따라 대표단을 한국에 파견하였다. 하지만 1948년 1월, 소련이 장악한 북한에서는 유엔 대표단의 입국을 거부하였으며, 이에 2월 26일 유엔 소총회는 선거 실시 가능 지역에서만 임무 수행을 결의하고 1948년 5월 10일 유엔 감시하에 총선거를 남한 지역에서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유엔 선거 감시단은 총선거를 2~3일 앞두고 춘천·강릉·영월 지역의 선거 상황을 시찰하기도 하였다.

[영월군에서의 5·10총선거]

5·10총선거 당시 좌익은 선거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을 방해하려고 파괴와 폭동을 일으켰는데, 영월도 예외가 아니었다. 실제로 상동면 내덕초등학교 투표함 운반 차량은 내덕리 전방 약 1㎞ 지점의 절벽 위에서 급습을 당하였으며, 이 사건으로 호송 경관 박진호와 대한청년단원 2명이 20일간 치료를 요하는 타박상을 입었다. 또 주천면 판운리 투표소에는 이만희 등 10여 명이 카빈소총을 휴대하고 급습하여 투표함을 파괴한 뒤 도망하기도 하였다.

좌익의 방해 속에서도 결국 영월 지역의 5·10총선거는 진행되었다. 영월에서는 국민회 소속으로 정규상, 대동청년단 소속으로 장원진 그리고 무소속으로는 장기영[후에 체신부장관, 서울시장 역임], 송순철이 입후보하였으며, 그 결과 무소속의 장기영 후보가 1만 2374표를 얻어 당선되었고 정규상 후보는 1만 815표를 얻어서 낙선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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