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14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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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世宗大王-聖坪-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성석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한석수 |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성석리에서 세종대왕과 성평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세종대왕이 안질을 치료하러 초정에 행차할 때 쉬어갔다는 성평의 지명유래담이다.
[채록/수집상황]
1982년 진천문화원에서 출간한 『내 고장 전통 가꾸기』와 1994년 진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진천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성평마을은 충청북도 진천에서 서울 방향으로 가면 나오는 진천중학교 입구에 있는 마을인데, 이곳에 세종대왕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한다.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와 한글 반포를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에 몰두하다 안질에 걸렸다. 세종대왕은 1444년(세종 26) 3월 청주 내수 초정에 치료차 내려가게 되었는데, 3월 1일 당시 진천현 북평(北平) 천변에서 하루를 쉬고 초정으로 갔다.
세종대왕은 초정에서 60여 일간 치료를 받은 후 환행하였는데, 5월 3일 다시 진천현 북평천에서 유숙하고 대궐로 향했다. 이전에는 그저 현재의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성석리 성평 지역을 북평 또는 북교(北郊)라 불렀는데, 세종대왕이 다녀간 후로는 성군(聖君)이 유숙하고 갔다고 하여 성평(聖坪)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세종대왕과 성평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는 ‘성평마을에서 유숙한 세종대왕’이다. 세종대왕이 치료차 청주 내수 초정으로 가던 중 당시 진천현 북평 천변에서 하루를 쉬고, 환행할 때 다시 하루를 머물렀는데 성군이 유숙하고 갔다 하여 진천현 북평 지역을 성평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지명유래담이다. 병환으로 임금이 지방의 약수터나 온천을 찾아 요양을 한 경우는, 안질을 치료하기 위해 초정약수터를 찾았다는 세종과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속리산 복천암 약수터를 찾았다는 세조가 있다. 당시는 왕의 지방 나들이가 특별했던 시대로서, 「세종대왕과 성평 이야기」 외에도 왕의 행차가 지나가거나 머물렀던 곳에서는 관련 전설이 여러 편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