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권번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4777
한자 達城券番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석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7년 1월 23일연표보기 - 달성권번 설립
해체 시기/일시 1941년연표보기 - 달성권번 폐쇄
성격 권번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었던 기생 단체.

[설립 목적]

달성권번(達城券番)은 노래와 춤을 가르쳐 기생을 양성하고, 교육과정을 수료한 기생들이 요정에 나가는 것을 지휘하고 감독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변천]

1926년 5월 대구경찰서에서 기생조합을 해산하고 ‘권번’으로 변경하라고 명령하자 대구기생조합은 1926년 12월 24일 대구기생조합에서 합자회사 달성권번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곧바로 조직을 혁신하고 규칙을 개정하여 종래 기생의 자택에서 손님에게 가무와 음곡을 제공하던 것을 일체 폐지하기로 하고 1927년 1월 23일 개업식을 하였다. 당시 취체는 염농산, 총무는 엄주상이다.

1932년에는 합자회사에서 주식회사로 전환한 후 배병렬이 지배인으로 취임하여 내부를 혁신하고 기생 양성에 주력하였다. 달성권번은 1941년 12월 8일 일본이 미국의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시작된 태평양전쟁이 본격화되면서 폐쇄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김해 김록주를 비롯하여 신금홍, 박지홍, 강태홍달성권번의 내로라하는 명인과 명창들이 전통 예인들을 육성하여 민족 전통예술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달성권번의 기생들은 1927년 대구 약령시가 열렸을 때 만경관에서 연주회를 가졌고, 만경관에서 열린 『동아일보』 본사 사옥 낙성 기념 독자 우대 연주회에서는 시조와 풍류를 연주하였다. 1929년에는 만경관에서 열린 한해 재민 구제 자선 연주회에 황금주, 김정도 외 20여 명이 출연하였다.

1931년 3월에는 조선정악단의 예천 공연에 신금홍, 정유색, 황금주, 이난향이 출연하였고 만경관에서 열린 만주동포구제연주회에는 80여 명이 총출동하여 「구운몽」과 「춘향전」 등을 공연하였다. 1933년에는 경성중앙방송국의 ‘DK대구데-’에 출연하여 남도잡가[신금홍, 백금화, 윤복희]와 가야금 병창[정금도 외 1인]을 연주하였고, ‘달성권번 혁신 제1차 연주회’를 대구극장에서 개최하였다. 1934년에는 수해 구제 연주회에 출연하였고 1936년에는 달성권번 기생 일동이 수해 이재민 동정 의연금 150원을 기부하였다.

[구성]

1928년 10월 당시 달성권번의 기적에는 74명의 기생이 올라 있었고, 관에서 베푸는 행사나 개인 연회 등에 놀음을 가는 기생은 50명이었다. 1931년 12월에 80여 명, 1934년 11월에는 60여 명, 1935년 2월에는 105명이 소속되어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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