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20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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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庇洞山亭記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상동 |
[정의]
개항기 이진상이 청도 출신인 박시묵의 부탁으로 지은 기문.
[개설]
「대비동산정기(大庇洞山亭記)」는 운강(雲岡) 박시묵(朴時默)[1814∼1878]이 경상북도 청도에 후진 양성을 위해 정사를 지은 뒤 친구인 이진상(李震相)[1818년∼1886]에게 부탁하여 받은 기문이다. 이진상은 구한말에 활동한 유학자이자 영남을 대표하는 학자이다.
[구성]
「대비동산정기」에서는 정사(精舍)의 창건 유래를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내용]
첫 단락에서는 두보(杜甫)와 소동파(蘇東坡)를 예로 들며 각각 공언(空言)[빈말]과 위언(躛言)[거짓말]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주자(朱子)의 말을 거론하여 불교에 경도된 소동파를 극렬히 비판하고 있다. 둘째 단락에서는 청도에 사는 친구 박시묵이 폐허가 된 대비사(大悲寺) 일대의 경관을 사랑하여 가산을 털어 땅을 사들인 뒤 정사(精舍)를 짓게 된 것을 설명하고 있다. ‘대비(大悲)’라는 이름 대신 ‘대비(大庇)’라는 편액을 걸기까지의 과정도 덧붙여 설명하였다. 마지막 단락에서는 박시묵에게 대비라는 이름에 걸맞게 가난한 사람을 감싸고 유학을 천명하면서 처신할 것을 당부하고 격려하고 있다.
[특징]
성리학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불교를 비판하고 유학을 천명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박시묵은 19세기 청도 유림에서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다. 「대비동산정기」는 박시묵이 후진 양성을 위해 정사를 창건하게 된 유래 외에도 당시 박시묵의 교유 관계를 엿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 의의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