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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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西河集-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1789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이상동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222년 - 『서하집』 최우에 의해 제학원에서 목판본으로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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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찬|간행 시기/일시 | 1713년 - 『서하집』 임재무에 의해 목판으로 중간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656년 - 『서하집』 운문사에서 인담이 발견 |
배경 지역 | 운문사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1789 |
성격 | 문집 |
작가 | 임춘 |
[정의]
조선 후기 청도 운문사에서 발견된 임춘의 문집.
[개설]
임춘(林椿)의 『서하집(西河集)』은 조선 숙종 때에 중간되었으나 초간본이 인멸되어 전하지 않았다. 그러다 1656년에 청도 운문사(雲門寺)의 승려 인담(印淡)이 꿈에 한 도사를 만나 그 도움으로 동탑(銅塔)에서 다시 찾아내었다고 한다. 또한 원래의 소장자는 담인(淡印)이었고, 후에 다시 발견한 자는 인담이었다는 점이 기이하다고 하여 후대 호사자(好事者)들과 역대 시화집(詩話集)에서 자주 언급되었다.
[구성]
『서하집』의 시문은 친구인 이인로(李仁老)가 잔고(殘稿)를 모아 6권으로 편집하고 아들 임비(林秘)를 시켜 교정 및 선사(繕寫)하여 둔 것을 최우(崔瑀)가 1222년에 서경(西京)의 제학원(諸學院)에 보내어 목판으로 간행하였다고 한다. 이 같은 내용은 『서하집』의 말미 최우의 「후서(後序)」에 기록되어 있다.
[내용]
고려 무신 집권기를 대표하는 문인 가운데 한 명인 임춘의 문집은 어떤 연유에서인지 조선조에 와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다 경상북도 청도의 운문사에서 발견되었는데, 신유한(申維翰)[1681∼?]이 쓴 발문과 임춘의 14대손 임재무(林再茂)가 쓴 「중각서하집발(重刻西河集跋)」에 그 전말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신유한의 발문에 적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언젠가 영남의 청도군에 잠시 있을 때 고을 사람 이생(李生)[이하구(李夏耈)]을 따라 노닐었는데, 그의 책갑 속에 『서하집』이 있는 것을 보았다. 바로 선생의 벗인 고려의 상서(尙書)인 미수(眉叟) 이인로가 서문을 써서 전한 것이다. 글자는 고색창연한데 책 주름에 드문드문 좀이 먹어 있었다. 이생이 갑자기 말하기를, “예전 병신년(1656년)에 운문사의 승려 인담이 약야계(若耶溪) 곁 소나무와 바위 사이에서 잠을 자다가 꿈에서 담인이라는 한 도사를 만났는데 가까운 거리의 빈 곳을 가리키며 ‘이곳을 파 보면 세상에 드문 보물을 얻게 될 것일세.’라고 했다.” 잠에서 깨어 그의 말과 같이 하니, 과연 동탑이 있었다. 높이는 4척이고, 중간에 한 개의 동으로 만든 동이가 있는데 높이는 동탑의 반 정도가 되었다. 또 동으로 동이의 입구를 덮어 놓았는데 봉함한 것이 대단히 촘촘하였다. 그것을 분리하여 『서하집』을 얻었다.[日寓居嶺之淸道郡 從郡人李生游 觀其櫝中有藏西河集 卽麗朝尙書李眉叟仁老以先生故人 序其集而傳者 字本蒼而古 往往蠹齧其襞已 李遽曰 是卷之出 芒乎异哉 昔在丙申 雲門寺僧印淡於若耶溪旁松石間 夢遇一道士 手指咫尺谽谷牙云 發此可得希世寶 起而如其言 果有銅塔 高四尺 中貯一銅盎 高半之 又以銅盖合盎口 封緘密甚 坼之得西河集]”고 하였다.
발문의 내용을 바탕으로 살펴보면, 신유한이 잠시 청도에 있을 적에 운문사 근처에 사는 이하구와 노닐다가 이하구의 책갑 속에 있던 고려 고본 『서하집』을 우연히 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인로의 서문을 통해 1656년에 『서하집』이 세상에 나오게 된 놀라운 경위를 알게 된다.
『서하집』의 발견에는 고려의 승려 담인이 동호에 『서하집』을 넣어 약야계[운문사 옆 개울] 곁에 갈무리하여 둔 것과 조선의 승려 인담이 꿈에서 담인을 만나 『서하집』을 얻었다는 신이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려 시대 항아리로 알려진 운문사 동호는 보물 제208호로 지정되어 있으나, 동탑은 아쉽게도 흔적이 없다.
신유한의 발문 뒷부분에는 1712년 신유한이 서울에 갔을 때 임춘의 14대 후손인 임재무를 만나 1656년에 운문사에서 발견한 『서하집』의 존재를 전해 주었다. 이에 임재무가 즉시 사람을 보내 청도 운문사에서 발견한 고려 시대의 고본 『서하집』을 얻어 1713년 홍양 진영장(洪陽鎭營將)[지금의 충청남도 홍성군]으로 갔을 때 목판으로 개간(改刊)하였다고 한다.
[특징]
『서하집』은 이후 몇 차례 더 간행되었는데, 1865년 후손 임덕곤(林德坤) 등이 6권 2책의 목활자로 개간하였고, 1957년에도 후손에 의해 6권 1책으로 석인(石印)하였다.
[의의와 평가]
임춘은 고려 무신 집권기를 대표하는 문인 가운데 한 명이다. 청도 운문사에서 발견된 임춘의 『서하집』은 무신의 난을 전후한 문단의 상황과 문인들의 의식 세계를 탐색할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또한 고려 시대의 문집이 영성한 현재의 사정을 감안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