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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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孔巖楓壁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상동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873년 - 「공암풍벽」 저자 조긍섭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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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933년 - 「공암풍벽」 저자 조긍섭 사망 |
배경 지역 | 공암풍벽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 |
성격 | 한시 |
작가 | 조긍섭 |
[정의]
조선 후기 조긍섭이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에 있는 공암(孔巖)을 소재로 쓴 한시.
[개설]
「공암풍벽(孔巖楓壁)」은 조선 후기 성리학자인 조긍섭(曺兢燮)[1873∼1933]이 청도의 공암을 소재로 하여 지은 한시이다. 운문의 승경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공암(孔巖)이다. 공암은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대천리에서 경주로 가는 길목인 운문면 공암리에 자리하고 있다. 높이 약 30m의 반월형 절벽으로 정상에 커다란 구멍이 있는데, 바닥이 강과 연결되어 있어 구멍 바위[孔巖]로도 불린다.
공암은 청도의 대표적 경관인 청도 팔경의 하나로, 청도 출신의 문인뿐만 아니라 인근 문사들, 청도 군수 등 다수의 인물이 한시를 남겼다. 외지인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주세붕(周世鵬)[1495∼1554]의 「과공암말서지역(過孔岩秣西芝驛)」과 황응규(黃應奎)[1518∼1598]의 「유공암(遊孔巖)」·「과공암기김백순(過孔巖寄金伯純)」, 김극일(金克一)[1522∼1585]의 「공암(孔巖)」, 손기양(孫起陽)[1559∼1617]의 「장유공암득졸운시양군(將遊孔巖得拙韻示兩君)」·「주성공암연구정양군(足成孔巖聯句呈兩君)」, 조정(趙靖)[1555∼1636]의 「공암도중(孔巖道中)」 2수, 이중경(李重慶)의 『유운문산록(遊雲門山錄)』에 실린 이심홍(李心弘)[1569∼1657]의 23수 가운데 2수 등이 전한다.
[구성]
「공암풍벽」은 7언 율시로, 운자는 ‘연(然)’, ‘연(緣)’, ‘변(邊)’, ‘천(天)’이다. 수련(首聯)과 함련(頷聯)에서는 공암의 형세를, 경련(頸聯)과 미련(尾聯)에서는 공암에서 느끼는 감회를 읊었다.
[내용]
「공암풍벽」을 지은 조긍섭은 청도 인근 지역인 창녕에 살면서 청도에도 많은 제자를 두었다. 조긍섭은 청도의 여러 곳을 유람하다 공암풍벽에 이르러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강반석탁기경년(江盤石坼幾經年)[강 감돌고 바위는 쪼개진 채 몇 해를 지났던가]
도등천혜이름연(度磴穿蹊已凜然)[비탈길 오르고 좁은 길 통과하자 기운이 싸늘하네]
종유수장난삭착(縱有殳斨難削斲)[비록 수장을 두더라도 깎고 쪼개기가 어려우니]
제비원□득반연(除非猿□得攀緣)[원숭이가 아니라면 오르기가 어렵다네]
시림고국한류외(始林故國寒流外)[차가운 시내 밖 시림의 옛 나라]
사간황비락조변(司諫荒碑落照邊)[석양 가 사간의 쓸쓸한 비석]
만설오거산수호(謾說吾居山水好)[내 산수 좋은 곳에 산다고 부질없이 말했지만]
향래진견옹중천(向來眞見甕中天)[이제야 참으로 별천지를 보았도다]
수련과 함련은 절벽 암괴 앞으로 강이 감돌아 흐르고, 비탈길을 오르고 좁은 길을 통과하여 정상에 올라서면 찬 기운이 감돈다고 하여 공암의 형세를 언급하였다. 수직 절벽으로 형성된 풍벽의 형상은 순임금의 신하인 수장에게 맡기더라도 이렇게 깎아지른 모습으로 만들 수 없고, 원숭이가 아니면 오를 수가 없는 위태로운 곳이라고 하였다.
경련과 미련에서는 공암 주위의 모습과 감회를 이야기하고 있다. 시림(始林)은 김알지(金閼智)가 태어났다고 하는 곳으로 곧 신라를 가리킨다. 강의 원류는 신라 땅인 산내(山內)에서 발원하여 공암을 거쳐 대천(大川)에 이르러 운문산(雲門山)에서 나온 물줄기와 합류한다. ‘사간의 쓸쓸한 비석’은 사간(司諫)을 역임한 뒤 인종(仁宗) 즉위 후 소윤과 대윤의 세력 투쟁이 첨예화되자 관직을 버리고 청도에 은거하며 삼족당(三足堂) 김대유(金大有)와 교유한 경재(警齋) 곽순(郭珣)[1502∼1545]의 사간정(司諫亭) 터를 지키고 있는 비석을 가리킨다.
[특징]
「공암풍벽」의 핵심은 경련과 미련에 있다. 단순히 경치를 읊고 개인적 감회로 끝을 맺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역사와 인물을 이야기하고 있다. 조긍섭의 학자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조긍섭의 「공암풍벽」을 포함한 청도 공암과 관련된 다수의 시를 통해 청도인에게나 외지인에게 공암이 운문 일대를 대표하는 경관으로 인식됨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