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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수 유월장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1871
한자 朴孝秀踰月葬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성용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에서 임종한 1996년 12월 31일부터 탈상한 1999년 2월 7일까지 거행되었던 박효수의 전통 장례.

[개설]

유월장은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했던 때에 멀리까지 부음을 전하고 문상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임종한 달의 그믐을 넘겨 장사(葬事)하는 장례이다. 흔히들 유림장(儒林葬)이라고도 한다. 유림장은 공덕, 사상, 덕행, 학행이 높은 선비에 대해 숭앙하는 의미로 유림에서 발의하여 지내는 장례식이다.

[연원 및 변천]

전통적으로 선비는 전국을 단위로 서로 학문을 논하고 교의하는 이가 많아 급박하게 상례를 지를 수 없어서 달을 넘겨서 지낸다는 장례관습에 유래하여 유월장이라 하였다. 조선전통사회에서의 유림장은 본래 석달 만에 장례를 치르게 되어있었다. 이 달에 죽음을 맞이하였다면 한 달을 지나고 그 다음 달에 지내야 했었다. 근래로 오면서 유림장을 치르는 상례기간이 축소되는 경우도 있었다.

유림장은 학덕이 높은 선비를 숭앙하는 의미로 유림에서 발의하여 지내는 장례식이다. 박효수는 노론 송시열 이후 성기운 등으로 이어지는 기호 학맥으로서 근래 유학자 권용현과 송병관에게 사사하면서 노론의 학통을 계승하였다. 박효수는 2백여명의 제자를 양성했고 『인암 문집』을 비롯하여, 시, 수필, 비문, 서간문 등이 담긴 21권의 문집을 집필하였다. 청도군에서 이러한 정도의 문집이 나온 것은 드문 일이었고 부모 사후 3년간 시묘를 지극히 행한 효행이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그리하여 유림에서는 박효수의 학행과 효행, 덕행을 높이 사서 유림의 대표가 될만한 자격이 있다고 판단하여 망자의 장례를 유림장으로 결정하였다. ‘선생’은 유림에서 죽은 선비에게 부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존칭이다.

[절차]

박효수 유월장 의 절차는 1996년 12월 31일 박효수가 임종한 날로부터 1997년, 초우, 재우, 삼우 등을 거쳐 1999년 2월 7일 탈상으로 진행되었다. 유월장은 크게 5 단계의 의례 수행 절차로 이루어졌다.

첫 번째 의례 절차는 초종, 치관, 습, 소렴, 대렴이다. 초종은 임종, 속광(屬纊), 고복, 수시, 치관으로 이어졌다. 임종하기 전 1주일전에 가족과 제자들은 박효수를 고향 집의 정침에 모셨다. 속광은 부모가 돌아가신 것을 확인하기 위해 햇솜을 코 위에다 놓아 숨이 거친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고복은 사자의 윗저고리를 들고 사자의 망령을 세 번 부르는 것을 말한다. 세 번 부르는 것은 혼을 불러서 다시 살아나라는 의미를 갖는다. 수시는 사자의 손발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손발을 창호지나 종이로 묶는 것을 말한다. 치관은 장의사가 소나무로 관을 만드는 과정이다. 이 때 쇠붙이를 사용하지 않는다. 체백(體魄)이 못에 닿지 않도록 한다는 의미이다. 습을 하는 과정에는 굴감(堀坎), 목욕이 따랐다. 굴감은 사자를 목욕시킬 때 사용한 수건, 빗 등을 묻기 위해 땅을 파는 과정을 말한다. 목욕물은 향나무를 잘라서 물에 넣어 끓여 만든 것으로 사용하였다. 운명하고 난 다음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는 소렴을 하였다. 운명하고서 3일 뒤에 향물을 적신 솜으로 얼굴과, 손, 발, 몸을 닦고 명주솜으로 시신의 물기를 완전히 닦아내는 대렴을 하였다. 이것은 사자를 정화하는 의례이다.

두 번째 의례로는 성복, 부고, 내빈과 외빈이 행해졌다. 운명한 지 나흘째 되는 날 상주와 복을 입은 친척들이 상복을 갈아입었다. 성복제를 지낸 뒤 부고를 친척, 지인, 친구들에게 보내었다. 영구를 담 안에 둘 때 내빈(內殯), 담 바깥에 둘 때 외빈(外殯)이라 하였다. 이어서 치관[소나무로 관을 만드는 과정], 천구(遷柩)[외빈에 모셨던 영구를 마루에 옮기는 과정], 발인, 급묘, 반곡, 우제, 졸곡, 부제, 소상, 대상, 담제, 길제의 순으로 행해졌다.

세 번째 의례 절차는 발인, 하관, 개토제, 제주제(題主祭), 산신제, 반혼, 우제로 이뤄졌다. 발인 때 광중의 악귀를 쫒기 위한 두 방상씨(方相氏)[상례때 악귀를 쫓기 위해 탈을 쓴 사람]가 행상 앞에 섰다. 파놓은 땅 안에 석곽을 넣고 회를 넣는다. 석곽에다 관을 넣은 다음 운삽(雲翣)을 넣었다. 성분(成墳)을 하고 지신에게 제사(開土祭)를 지냈다. 유림 대표가 지방과 같은 양식으로 신주에 글을 써넣는 제주(題主)가 이루어진 다음 제주제를 지냈다. 산신에게 망자를 잘 보살펴 달라는 산신제를 올렸다. 산역이 끝난 뒤 혼백을 집으로 모셔오는 반혼과정이 있었다. 입관한 후 집으로 돌아와서 처음으로 상주가 제사를 지냈는데 초우제이다. 다음날 재우제를, 3일 째 되는 날 삼우제를 지냈다.

네 번째 의례 절차는 졸곡제, 부제, 소상, 대상, 담제, 길제 순으로 이어졌다. 졸곡제는 장례를 치룬 뒤 석 달 만에 행하였고, 이 후 곡을 하지 않았다. 졸곡제를 지낸 다음 달에 사당에서 부제를 지냈다. 돌아가신지 한 돌에 소상을, 두 돌에 대상을 지냈다. 담제는 대상을 지내고 난 뒤 한 달 뒤에 행하였다. 길제는 담제를 지낸 다음 달 정일이나 해일을 택하여 지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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