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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1112
한자 徐正基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유호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3년 1월 24일연표보기 - 서정기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4일 - 서정기 청도읍 유호리 유천시장 만세 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7일 - 서정기 대구 지방 법원에서 징역 6개월 언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5월 13일 - 서정기 대구 복심 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
몰년 시기/일시 1924년연표보기 - 서정기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2년 - 서정기 대통령 표창 추서
출생지 서정기 출생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유호동지도보기
활동지 서정기 활동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유호동
성격 3·1 운동
성별
대표 경력 청도읍 유호리 유천 시장 만세 운동 주도

[정의]

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서정기(徐正基)[1903∼1924]는 1903년(광무 7)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유호리(楡湖里)에서 출생하여 1924년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4일 청도읍 유호리 유천 시장에서 전개된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14일 청도읍 유호리 유천 시장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은 당시 장로교회 조사(助事) 김보곤(金寶坤)에 의해 시작되었다. 김보곤은 1919년 3월 2일 평양 신학교(平壤神學校)에 입학하기 위하여 가던 중, 황주역(黃州驛)에서 평양 신학교 학생인 이승길(李承吉)에게서 파리 강화 회의 소식과 국내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만세 운동에 대해 듣게 되었다. 이에 김보곤은 고향에서 만세 운동을 일으킬 것을 다짐하고 바로 돌아왔다.

고향 청도로 돌아온 김보곤은 3월 13일 서정기를 비롯한 조경윤(趙景潤)[또는 조차상(趙且尙)]·김타관(金他寬)·정술문(鄭述文) 등에게 국내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만세 운동 소식을 말하고, 다음날인 3월 14일 유천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 운동을 일으키자고 제의하였다. 이에 서정기김보곤의 제의에 찬성하고 만세 운동 준비에 들어갔다. 김보곤은 김타관과 정술문에게 밀양 공립 보통학교 학생들에게 참가를 권유하는 통지서를 발송하게 하는 한편, 태극기 24매를 만들어 서정기와 조경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이 계획이 누설되어 3월 14일 유천 장터에는 일제 경찰의 경계가 삼엄하였다. 그리하여 만세 계획은 실패하였고, 주동자들은 모두 체포되었다.

체포된 서정기는 1919년 4월 7일 대구 지방 법원에서 징역 6개월을 언도받고 공소하였으나, 5월 13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2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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