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0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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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炭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상동 |
[정의]
조선 후기 청도의 검(劍)의 명장(名匠).
[개설]
탄재(炭齋)는 경상북도 청도군에 살던 검을 만드는 장인이다. 성은 신(申)이고,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아 탄재라는 호로 불렸다. 조선 후기에는 청도군에서 생산된 보검(寶劍)과 보도(寶刀)를 으뜸으로 쳤는데, 이는 탄재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이룩된 성과임이 여러 문헌에 전한다.
[가계]
미천한 신분이라 가계는 알 수 없다. 성은 신(申)이고, 이름 대신 탄재(炭齋)라는 호로 불렸다.
[활동 사항]
이옥(李鈺)[1760∼1812]의 『문무자문초(文無子文鈔)』에 탄재(炭齋)[?∼?]와 관련된 이야기가 실려 있다. “탄재의 성은 신씨이고, 청도군의 벙어리 검공이다. 이름이 없어 탄재라는 호로 행세했다. 칼을 잘 만들었는데 그의 칼은 날카로우면서도 가벼워 이따금 일본의 칼을 능가한다. 다른 도공들의 경우 쇠를 고르는데 세심하게 하는데 반해 탄재의 검은 쇠를 묻지 않고 오직 값만 물었고, 가격이 높은 것을 상품으로 친다[炭齋者 姓申 淸道郡之啞劍工也 無名 以號行 善鑄刀 刀利而輕 往往出日本刀 刀工皆精擇金 炭齋不問金 惟問價 價重者得上].”
이 글을 통해 탄재는 벙어리인데다 이름 없이 호로 행세할 만큼 미천한 신분이었지만, 탄재가 만든 칼에 대해서는 가격을 묻지 않을 만큼 검을 만드는 데 있어 최고의 장인으로 인정받았음을 알 수 있다. 탄재는 성격이 몹시 사나운데다 자신이 정한 원칙에 어긋나는 부당한 요구를 과감하게 거부했는데, 자기에게 거스르는 사람이 있으면 부젓가락과 쇠망치를 겨누었고, 부당한 일을 시킨 경상 감사의 사자 앞에서 상투를 자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행위는 자신의 일에 대한 믿음과 자부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탄재가 만든 검은 대외적으로도 인정을 받았는데, 왜인들도 탄재의 검을 보고 신품(神品)이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탄재의 기술은 제자들에 의해 전수되어 청도군이 검의 명산지가 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