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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1022
한자 金容禧
이칭/별칭 사길,모계,대학범민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이상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2년연표보기 - 김용희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42년연표보기 - 김용희 사망
출생지 김용희 출생지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 백곡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김용희 거주지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 백곡
묘소|단소 김용희 묘소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 2리 와우산 선영 산50-3번지지도보기
성격 문인
성별
본관 김해

[정의]

근대 청도 출신의 문인·학자.

[개설]

김용희는 청도 지역의 유림으로서,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때 어려운 조국의 현실에 대해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숭조 사업을 벌여 자계 서원을 중건하고 청계 서원을 창건했으며, 구휼 사업을 펼쳐 의장(義庄)을 설치하여 가난에 시달리는 친인척과 이웃을 도왔다. 또 학문적 노력도 기울여 『성리대전(性理大全)』·『입학도설(入學圖說)』·『역대기년(歷代紀年)』 등을 간행하고 『탁영문집속집(濯纓文集續集)』·『삼족당유고(三足堂遺稿)』 등을 판각하였다.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사길(士吉), 호는 모계(慕溪)·대학범민(大學凡民). 탁영 김일손의 14세손으로, 청도군 화양읍 토평 1리 백곡에서 백헌 김병두(金炳斗)의 5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척암 김도화의 문인으로 학문에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재화에도 밝아 아버지의 천석 재산을 만석으로 불렸다.

아들 김경곤(金景坤)은 육영과 자선 사업을 위해 살아온 아버지의 뜻을 기리기 위해 아버지의 호를 따서 1947년 모계 학원을 개교하였다.

[활동 사항]

김용희(金容禧)[1862∼1942]는 만석의 재산을 바탕으로, 숭조 사업과 구휼 사업에 힘을 기울였다. 자계 서원을 중건하고, 청계 서원을 창건했으며, 김해 수로왕릉 내에 있는 회노당을 중건하였다. 선조인 김극일·김일손·김대유의 묘재와 묘각·정자 등을 건립 보수하였다. 구휼 사업으로는 범중엄(范仲淹)의 의전 의택(義田義宅)을 본받아 의장(義庄)을 설치하여 가난에 시달리는 친인척과 이웃을 구휼하였다. 청도 지역 곳곳에는 김용희의 구휼을 증명하는 송덕비가 세워져 있다.

또한 『성리대전』·『이자수어(李子粹語)』·『입학도설』·『수사언인록(洙泗言仁錄)』·『오복연혁도(五服沿革圖)』·『역대기년』을 간행하고, 『탁영문집속집』·『삼족당유고』·『도연정집(道淵亭集)』을 판각하였다. 그 외에도 영남에서 출간된 다수의 서적 판각 사업에 힘을 보탰다. 후일 유림으로부터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도산 서원과 병산 서원, 서악 서원과 자계 서원의 원장을 역임했다.

[학문과 저술]

글이 간행되지는 않았지만, 문집 간행을 위한 필사본의 형태로 다수가 남아 있다. 여기에는 시와 서·제문·잡록 등 문체별로 수록되어 있는데, 편지[書]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의 문집에 수록된 편지를 통해 이황유성룡 가문 등 영남 남인 계통의 핵심 집안과 혼맥을 형성한 과정을 살필 수 있다. 동시에 청도와 인근 지역, 안동·서울 등 여러 지역의 인물과 교류하고 있어, 당색(黨色)을 넘어 폭넓은 교유 관계를 맺었음을 엿볼 수 있다.

[묘소]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 2리 와우산 선영 산50-3번지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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