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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리 밀양 박씨 집성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944
한자 薪旨里密陽朴氏集姓村
분야 성씨·인물/ 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래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520년 - 신지리 밀양 박씨 집성촌 박하담이 신지 1리에 입향
개설 시기/일시 1570년 - 신지리 밀양 박씨 집성촌 박경윤이 신지 2리에 입향
개설 시기/일시 1690년 - 신지리 밀양 박씨 집성촌 박의묘가 신지 3리에 입항
성격 동성 마을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에 있는 밀양 박씨 집성촌.

[명칭 유래]

신지는 선마리라고 부르고, 섭마리라고 쓴다. 신지리는 자연 마을로는 선호와 선바위, 사거리, 죽전, 신목정, 어성, 지부골이 있다. 밀양 박씨 동성 마을은 임당리에서 내려오는 운문천이 감돌고 있는 곳으로, 선바위가 있어서 선호(仙湖)라고 한다. 옛 기록에는 용이 물을 건너다 강 중간에서 멈춘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하며 1959년 사라 태풍 때 용의 목에 해당하는 부분이 부러져서 떨어져 나간 밑둥치가 남아 있다. 이 바위 아래 있는 깊은 소가 바로 선호이다. 박하담은 옛날 작은 절 곁에 소요당을 짓고 이곳에서 여생을 마쳤다고 하며, 그의 후예들이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신지 1리인 신지(薪旨)에는 1520년(중종 15) 밀양 박씨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1479∼1560]이 입향해 정착하였으며, 신지 2리에는 1570년에 밀양 박씨 박경윤 신지 1리에서 이거하였다고 전해진다. 신지 3리에는 1690년에 신지 1리에서 밀양 박씨 박의묘가 이거하여 세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연 환경]

동네 전체를 동창천이 감싸고 돌아가고 있으며, 넓은 시내를 휘돌아서 암벽과 수림 곳곳에 용두소와 소요대와 같은 명승지들이 위치한다. 지방도 919호선이이 마을 중앙을 지나가며, 동곡리 방면으로 좌측에 동창천이 도로와 함께 나란히 지나간다. 우측으로는 오봉리박곡리가 위치하며, 인접하여 임당리가 위치한다.

[현황]

1970년대를 전후로 하여 신지리에는 밀양 박씨 100여 가구가 생활하였으나, 현재는 많은 집들이 대도시로 이주하여 2012년 현재 약 50여 가구가 생활하고 있다.

보물 제917호인 『배자예부 운략』 판목, 중요 민속 문화재 제106호인 운강 고택이 있고,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자료 제268호 섬암 고택, 제269호 명중 고택, 제270호 운남 고택, 제271호 도일 고택, 제208호 『해동 속소학』 판목, 제108호 『십사 의사록』 판목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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