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8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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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珉琢戶口單子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광우 |
[정의]
1878년 경상도 청도군 중동면에 거주하고 있던 박민탁의 호구 단자.
[저자]
「박민탁 호구 단자(朴珉琢 戶口 單子)」의 작성자는 해당 호(戶)의 호주인 박민탁이다. 박민탁은 본관이 밀양이고, 직역(職役)이 유학(幼學)이며, 1843년 생[계묘생]으로 호구 단자를 제출하던 당시 36세였다. 경상도 청도군 중동면(中東面) 길부리(吉富里)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곳은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일대이다. 신지리에는 지금까지 밀양 박씨(密陽 朴氏) 일문이 세거해 오고 있다.
[편찬/간행 경위]
조선 시대에는 각 고을의 호구 사실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호적을 작성하였다. 호적을 정리하기 위해 일차적으로 고을의 각 호마다 호구 자료를 제출하게 했는데, 그것이 호구 단자이다. 호구 단자에는 호주의 나이, 직역, 거주지, 가족, 사조(四祖), 처의 사조, 노비 등을 기재하였다. 「박민탁 호구 단자」도 이 같은 이유로 1878년 박민탁이 청도군에 제출하고자 작성한 것이다.
[형태/서지]
1매이며, 크기는 가로 60㎝, 세로 52㎝이다.
[구성/내용]
가장 첫줄에는 ‘광서 4년 무인 월 일 청도군(光緖 四年 戊寅 月日 淸道君)’이라 하여, 1878년 청도군에 제출된 것임이 명기되어 있다. 두 번째 줄에는 ‘제4호 유학 박민탁 년 36 계묘생 본 밀양 주 중동면 길부리(第四戶 幼學 朴珉琢 年三十六 癸卯生 本密陽 住 中東面 吉富里)’가 명기되어 있어, 호수와 호주의 신상 및 거주지가 확인된다.
세 번째 줄부터는 호주의 4조, 가족, 호주 처의 4조가 순서대로 기재되어 있다. 호주의 부친은 학생(學生) 박취규(朴聚奎), 조부는 학생 박세광(朴世光), 증조부는 학생 박덕양(朴德陽), 외조부는 학생 예덕우(芮德虞)[본관 의흥]이고, 봉양하고 있는 모친은 63세의 의흥 예씨(義興 芮氏)이다. 처는 37세의 김해 김씨, 처의 부친은 학생 김상호(金尙浩), 처의 조부는 학생 김진봉(金振鳳), 처의 증조부는 학생 김시철(金時喆), 처의 외조부는 학생 권문학(權文鶴)[본관 인동]이다. 이어 칸을 내려 좌측 하단부에 월적(粵迪)이라 부르던 59세의 노(奴) 1명을 기재해 놓았다. 이는 호주 박민탁은 아내와 함께 모친 의흥 예씨를 모시고 살았으며, 노 월적을 거느리고 길부리에 거주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호구 단자의 마지막 줄에는 ‘병자 호구 상준인(丙子戶口相準印)’이라 기재되어, 호구 단자가 병자년인 1876년의 호구 조사에 따라 작성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한편 「박민탁 호구 단자」와 함께 전북 대학교 박물관에는 박민탁의 부친 박취규의 1875년 호구 단자가 함께 소장되어 있어 참고가 된다.
[의의와 평가]
19세기 후반 청도 지역 사회 구성원의 존재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유사한 시기, 동일 지역에서 작성된 호적 자료로 타 지역과의 비교 연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