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7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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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집필자 | 박윤제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에 있는 사람이나 동물 등의 주검을 묻어 두는 구조물.
[개설]
무덤의 형태는 지역과 풍속에 따라 약간씩 다르긴 하지만 기본적인 형태는 비슷하다. 먼저 땅에 구덩이를 네모지게 파서 돌로 양옆을 쌓거나 판석으로 방을 만든 다음, 시신을 넣고는 천개석[덮개]를 덮고 그 위에 흙을 모아서 봉분을 만든다.
[변천]
청도 지역에 발굴된 무덤의 양식을 보면 시대별로 달라지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지금까지 청도 지역에 발굴된 무덤으로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인 고인돌이 가장 먼저라고 알려져 있다. 고인돌 안에는 돌로 만든 병장기가 들어 있고, 홍도가 함께 묻혀 있었다.
다음은 고분을 볼 수 있는데, 도굴꾼들에 의해 먼저 도굴되고 난 다음 발굴되거나, 공사나 농지 개간 때 우연히 발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봉분의 모양은 알 수 없지만, 바닥이나 벽면 덮개석과 부장품은 고인돌과 별로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윗부분인 커다란 돌이 덮이는 부분에 돌을 덮지 않고 흙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삼국 시대가 되면 평지나 강변에 있던 고인돌과 고분에서 벗어나 점차 무덤의 조성 위치가 산으로 올라가게 된다. 중앙 고속 도로[신 대구∼부산 간 고속 도로] 건설로 인해 발굴된 원삼국 시대의 무덤에서는 한 봉분 안에 시신을 네 번 봉안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무덤의 형태가 횡구식인 것으로 보아 시차를 두고 시신을 차례로 넣었던 것 같았다. 부장품도 작지만 함께 넣어 두었다.
고려의 무덤은 장방형으로 만들어졌으며 봉분이 남아 있지만, 청도에는 대부분 도굴된 상태로 발견되기 때문에 부장품은 어떤 것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혼유실(魂遊室)을 만들거나 수저를 넣어 둔 무덤을 볼 수가 있다.
조선 전기의 무덤은 고려 때의 것과 비슷하지만, 임진왜란 이후의 묘는 현재의 봉분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현황]
최근에 와서는 묘지로 인해 잠식되는 토지가 점차 많아지는 것을 우려하는 사회 분위기에 따라 공원묘지가 유행하였고 있다. 또한 화장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서 유골을 보관하는 납골당 형태의 무덤도 확산되고 있다. 2012년 현재 장묘 문화는 매장과 화장이 반반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화장을 한 다음 나무 아래 뿌리거나 나무 밑에 묻는 수목장도 서서히 확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