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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650
한자 陳羅里-遺蹟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진라리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박승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2년 7월연표보기 - 진라리 마을 유적 영남 문화재 연구원에서 발굴 시작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3년 5월연표보기 - 진라리 마을 유적 영남 문화재 연구원에서 발굴 완료
원소재지 진라리 마을 유적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진라리 답918-1지도보기
성격 주거 유적
면적 19,122㎡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진라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마을 유적.

[개설]

진라리 마을 유적중앙 고속 도로[대구∼부산 간 고속 도로] 건설에 앞서 영남 문화재 연구원에 의해 2002∼2003년에 발굴 조사된 유적이다. 이 유적은 청동기 시대 주거지와 고인돌, 고상 건물지 등이 분포하는 청도 지역 최대 규모의 마을 유적이다. 이 유적에는 청동기 시대 마을 유적 이외에도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 토기와 이중 구연 토기가 출토되는 수혈 유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신석기 시대 말기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청동기 시대의 주거지 93동, 고인돌 5기, 고상 건물지 4기, 수혈 유구 22기 등이 조사되었다. 청동기 시대 주거지는 장방형과 세장방형, 원형 주거지가 함께 분포하며, 출토 유물은 단도마연 토기를 비롯한 민무늬 토기와 돌화살촉, 돌칼, 돌검, 돌도끼 등이 있다. 고인돌은 상석과 하부의 석관묘돌널무덤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출토 유물로는 국내 최대 길이의 돌검과 돌화살촉, 단도마연 토기 등이 있다.

[위치]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진라리 답 918-1 일대로서 진라리무등리 사이의 논밭에 해당된다. 청도읍에서 경산, 대구로 이어지는 국도 25호선중앙 고속 도로와 만나는 지점이 발굴된 지역이다. 지금은 고속 도로 교각 아래와 주변에 걸쳐 청동기 시대 유적 공원이 만들어져 있다. 유적의 북쪽으로는 야산이 연결되고 남쪽으로는 경부선 철길 건너의 주구산이 있고 그 사이에 다로천이 흐르는 입지를 보여준다. 주변 유적으로는 청동기 시대 무등리 고인돌과 송읍리 주거 유적이 분포하고 삼국 시대의 원정리 고분 떼와 주구산성이 분포한다.

[형태]

진라리 마을 유적은 청동기 시대 주거지와 고인돌, 고상 건물지, 야외 노지, 수혈 유구 등이 분포하는 대규모의 마을 유적이다. 이 유적의 총면적은 19,122㎡로서 신석기 시대 말기부터 청동기 시대에 걸쳐 형성되었으며, 주거지 93동, 고인돌 5기, 고상 건물지 4기, 수혈 유구 22기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적의 일부만 발굴되어 취락의 전체적인 양상은 파악하기 어려우나 크게 주거지군과 고인돌로 구성되어 있다.

주거지군은 대형의 세장방형 주거지를 중심으로 몇 개의 군으로 나뉘어 있다. 고인돌은 5기로 이루어진 한 무리를 발굴하였으며, 마을 내부에서 파괴된 상석이 따로 무리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여러 군으로 나누어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돌은 상석과 하부의 돌널로 구성되어 있으며, 2기만 상석이 남아 있고 나머지는 하부 돌널만 남아 있었다. 고인돌의 하부 구조는 할석과 천석을 사용하여 축조한 돌덜널형 돌널무덤으로 길이 155∼235㎝, 폭 50∼72㎝, 깊이 15∼70㎝이다.

주거지는 모두 수혈 주거지로서 세장방형과 장방형, 방형, 원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방형은 대부분 소형으로 창고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세장방형 주거지는 길이 10∼14m에 이르는 대형이며, 장방형계 주거지는 길이 4∼5m이고 원형 주거지는 직경 4∼6m에 이른다. 장방형계 주거지에는 벽구와 벽주혈이 만들어져 있고 내부에는 위석식 노지와 원형 노지가 함께 만들어진 것도 있다.고상 건물지는 대형 창고로 추정되며, 길이가 10∼14m에 이르기도 한다.

유적의 형성 연대는 출토 유물로 보아 세장방형과 장방형 주거지는 청동기 시대 전기로, 원형 주거지는 청동기 시대 후기로 추정된다.

[현황]

중앙 고속 도로 건설로 인해 발굴된 유적으로, 발굴 조사가 완료된 후에 발굴 범위 중 교각이 세워진 부분을 중심으로 고인돌과 주거지, 고상 건물지가 복원되어 유적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그리고 최근에 이 유적의 남쪽에 있는 청도∼경산 간 국도 확장 공사 구간에서도 본 유적과 동일한 주거 유적들이 발굴되었으며, 이러한 양상으로 보아 진라리 마을 유적이 남쪽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진라리 마을 유적은 주거지와 고인돌, 고상 건물지, 수혈 유구 등이 분포하는 청도 지역 최대 규모의 마을 유적이다. 이 유적에는 청동 시대 마을 유적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나, 이외에도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 토기와 이중 구연 토기가 출토되는 수혈 유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신석기 시대 말기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 유적은 고인돌과 주거지가 함께 분포하는 양상과 더불어 대형의 세장방형 주거지를 중심으로 몇 개의 군을 이루고 있어 청동기 시대 청도 지역 마을의 형성 구조를 추정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출토 유물은 단도마연 토기를 비롯한 민무늬 토기와 돌화살촉, 돌칼, 돌검, 돌도끼 등이 있으며, 고인돌의 하부 돌널무덤에서 출토된 국내 최대 길이의 돌검이 주목된다.

진라리 마을 유적은 주변에 무등리 고인돌과 범곡리 고인돌, 송읍리 주거 유적과 연계되는 청도 지역 마을 유적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또 주거지와 고인돌, 고상 건물지, 수혈 유구에서 출토된 각종 민무늬 토기와 돌칼, 돌화살촉, 돌칼 등의 유물은 청도 지역의 청동기 문화를 해명하는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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