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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라리 골아가리 토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543
한자 陳羅里-土器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기명류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김구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토|발굴 시기/일시 2002년 7월 29일연표보기∼2003년 5월 30일연표보기 - 진라리 골아가리 토기 발굴
현 소장처 진라리 골아가리 토기 -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76
출토|발견지 진라리 마을 유적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진라리 답918-1지도보기
성격 토기
양식(문양) 눈금
재질 점토
크기(높이) 23.2㎝[3호 주거지 발형 토기①]|18.2㎝[3호 주거지 발형 토기②]|45.3㎝|48.3㎝
소유자 국립 경주 박물관
관리자 국립 경주 박물관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진라리에서 출토된 청동기 시대의 골아가리 토기.

[개설]

골아가리 토기란 아가리 윗면에 도구 등을 이용하여 눈금을 새긴 한국 청동기 시대의 민무늬 토기 가운데 하나이다. 입술에 새김무늬가 있다고 해서 구순 각목문 토기[口脣刻目文土器]라고도 한다. 대체로 청동기 시대 전기와 중기 전반에 유행하였다. 진라리 유적에서는 세장방형 주거지[3호, 8호, 54호, 71호]와 장방형 주거지[64호], 소형의 말각장방형 주거지[79호], 원형 주거지[1호, 26호], 수혈[3호]에서 출토되었다.

3호에서 바리 모양 토기[鉢形 土器] 2점과 깊은 바리 모양 토기[深鉢形 土器] 1점, 바리 모양 토기 아가리 조각 3개, 64호에서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 土器] 1점, 71호에서 작은 바리[小形 鉢]과 깊은 바리 모양 토기 각 1점, 8호와 54호에서는 바리 모양 토기 아가리 조각이 각각 하나씩 출토되었다. 현재 국립 경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형태]

진라리 3호 주거지에서 출토된 바리 모양 토기 1은 높이 23.2㎝, 입 지름 18.9㎝, 몸통 최대 지름 19.3㎝, 바닥 지름 9.1㎝이다. 출토 당시 남단벽 부근 바닥에 거꾸로 놓여 있었다. 태토는 석영과 장석 알갱이가 섞인 점토를 사용했고, 색조는 등색과 적갈색으로 고르지 않다.

생김새는 아가리 반지름 정도 크기의 비교적 좁은 굽이 붙어 있으며, 여기서 벌어져 오르던 기벽이 동체 중위에서부터 수직으로 뻗어 올라 아가리에 이르는 형태이다. 아가리 윗면에는 안에서 밖으로 오른쪽을 향해 사방향의 눈금을 촘촘히 새겼다. 기표면의 색조 차이와 더불어 그릇 속에 흑갈색을 띠는 유기물 탄화흔이 부착되어 있기 때문에 음식을 끓이는 데 사용된 자비용(煮沸用) 조리구로 사용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진라리 3호 주거지에서 출토된 바리 모양 토기 2는 높이 18.2㎝, 입 지름 16.7㎝, 몸통 최대 지름 17.8㎝, 바닥 지름 9.4㎝이며, 심발형 토기의 추정 크기는 높이 37∼40㎝, 입 지름 23.5㎝, 몸통 최대 지름 25.5㎝, 바닥 지름 10.3㎝이다.

진라리 64호 주거지에서 출토된 호형 토기 1점은 높이 45.3㎝, 입 지름 26.6㎝, 목 지름 22.2㎝, 몸통 최대 지름 37.4㎝, 바닥 지름 13.1㎝이다. 벽면에 연접해서 놓였던 것이 그대로 주저앉은 상태로 출토되었다. 태토는 석영과 장석 알갱이가 섞인 점토를 사용하였다. 색조는 내외면 일부에 회흑색을 띠는 곳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등색이다. 생김새는 끝이 잘린 계란형의 몸통에 다소 불안정한 굽이 달렸고 동체부의 중상위에서 최대 지름을 이루면서 다소곳한 어깨를 가지다가 바깥으로 벌어져 올라 나팔모양의 아가리로 끝이 났다.

편평한 아가리 윗면에는 안에서 밖으로 왼쪽을 향해 비스듬하게 눈금을 새겼는데 간격은 일정하지 않다. 동체부와 저부의 결합 부위 바깥쪽에 손 누름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으며, 기면은 물손질로 잘 정면하였다.

진라리 유구 71호 주거지 출토품인 대형의 깊은 바리 모양 토기는 높이 48.3㎝, 입 지름 28.2㎝, 몸통 최대 지름 31.7㎝, 바닥 지름 11.4㎝이다. 서쪽으로 치우친 남장벽면에 연접해서 똑바로 세워져 있었던 것이 내려앉은 상태로 출토되었다. 태토는 석영과 장석 알갱이가 섞인 점토를 사용하였다. 색조는 전반적으로 등색을 띤다. 외면 일부와 내면의 아가리에서 16㎝ 아래로 흑갈색 유기물 탄화흔이 눌러 붙어 있어 3호에서 출토된 바리 모양 토기와 마찬가지로 음식을 끓이는 데 사용되었던 자비용 토기로 볼 수 있다. 생김새는 전체적인 그릇의 크기에 비해 굽이 작아서 다소 불안정한 기형이다. 기벽은 바닥에서 벌어져 오르다가 동체 중위에서부터 수직에 가깝게 이행한 후 다시 아가리 쪽으로 가면서 살짝 내경시켜 오므라든 형태이다. 반듯한 아가리 윗면에는 비스듬하게 눈금을 촘촘히 새겼는데 간격은 일정하지 않다. 그리고 아가리 아래쪽 5.5㎝ 지점에 점토 띠 접합흔을 남겨 겹아가리 흉내를 낸 뒤 이 선을 중심으로 짧은 빗금무늬를 위쪽에서 시작하여 아래쪽 왼편으로 그어 내려 새겨 나갔다.

[특징]

진라리 유적에서 출토한 골아가리 토기를 문양 조합 관계로 나누어 보면, 먼저 순수 골아가리 토기로는 바리 모양 토기 4점[주거지 3호, 71호, 79호]과 항아리 토기 1점[주거지 64호]이 있다. 다음으로 겹아가리 짧은 빗금 무늬[二重口緣短斜線文]와 결합한 것으로 주거지 71호의 깊은 바리 모양 토기 1점이 보고되어 있지만, 이것은 점토 띠 접합 부위에 선모양의 흔적만 겨우 남은 변형 겹아가리여서 형식 분류상 주거지 3호, 8호, 79호 등에서 보이는 빗금무늬 토기[短斜線文 土器]의 범주에 포함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짧은 빗금무늬와 결합한 것 가운데 깊은 바리 모양 토기 2점[주거지 3호, 8호]과 아가리 조각으로 주거지 79호에서 출토한 것이 있다.

이로 보면 진라리 유적의 골아가리 토기는 순수 골아가리와 짧은 빗금무늬가 결합된 골아가리 두 종류로 크게 구분된다. 그리고 자료의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바리 모양과 항아리 모양의 기종에서는 골아가리 무늬만 채택하고 있으나 깊은 바리 모양에서는 짧은 빗금무늬가 결합된 양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한국의 청동기 시대 문화라는 큰 틀 안에서 청도 지역이 갖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나타내는 지표로서 중요한 유물의 하나이다. 그리고 함께 출토한 공반 유물을 통해 당시 생활 문화의 일면을 살펴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유물의 비교나 편년 연구에 있어서도 학술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

AMS 연대 측정 결과, 각 주거지에서 채취한 숯 시료의 보정 연대는 3호 주거지 기원전 970년, 8호 주거지 기원전 1260년, 64호 주거지 기원전 1100년, 71호 주거지 기원전 1220년으로 나와 참고가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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