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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곡 부곡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418
한자 北谷部曲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부야리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강래업

[정의]

전근대 시기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부야리 일대에 있던 특수 행정 구역.

[개설]

청도군에 직접 속한 부곡은 『신증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대동지지(大東地志)』, 『청도 군지(1879)』에 의하면 매전 부곡(買田部曲)[역이 있음], 북곡 부곡(北谷部曲)[군 동쪽 25리(9.818㎞)], 부곡 부곡(釜谷部曲)[군의 북쪽 15리(5.891㎞)] 등 3곳이 있으며, 『청도 문헌고』에는 위 3곳 외에 거연 부곡(巨淵部曲)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청도군 읍지인 『오산지(鰲山誌)』 [1673년]에는 부곡에 관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오산지』가 편찬될 당시인 17세기 후반에는 청도군의 부곡은 이미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청도군의 동쪽에 있었던 북곡 부곡은 오늘날 청도읍 부야리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으로 추정된다. 북곡 부곡에 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청도군 고적 조에 처음 기록되어 있으나 북곡 부곡을 설치한 목적은 알 수 없다.

북곡 부곡이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야리는 일제 때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소야리(所也里)와 부곡리(釜谷里)[가마실]를 합쳐서 생긴 행정 구역 명칭이다. 특히 부야 1리인 소야(所也)는 일찍부터 각종 철기를 생산한 소(所)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주변 산지에서는 최근까지 철광을 채굴하였으며, 옹기를 만든 옹기굴이 있었던 곳이다. 부야 2리에 해당하는 가마실은 주변에서 토기나 옹기를 만든 흔적인 가마를 찾을 수 없으나 소야와 같이 쇠를 만드는 가마가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도 부야 1리의 주변 산지에서는 철광을 최근까지 채굴한 것으로 보아 북곡 부곡은 철기 생산을 한 사람들의 집단 거주지로 추정된다.

[변천]

『신증동국여지승람』편찬 당시인 16세기경에 부곡이 해체되는 일반적 추세에 따라 북곡 부곡도 해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면리제에 따라 청도군 하남면(下南面) 혹은 내종도면(內終道面)에 속했다가 1914년 행정 구역이 개편되면서 청도군 대성면에 속했으며, 8·15 해방 이후 청도군 청도읍 부야리가 되었다.

[의의와 평가]

북곡 부곡은 현재 청도군 청도읍 부야리 일대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청도군 고적 조에 처음 기록되어 있으며, 일찍부터 청도군에 속한 부곡이다.

청도 지역에 설치된 부곡은 대부분 수공업에 종사한 신분이 낮은 사람들의 집단 거주지로 추정되며, 『오산지』가 편찬된 17세기에는 이미 부곡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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