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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의 신통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1964
한자 圓光-神通力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집필자 박유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1년 - 「원광의 신통력」 『내 고장 전통문화』에 수록
관련 지명 가슬갑사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45지도보기
성격 설화|신이담
주요 등장 인물 원광|신|이웃 중
모티프 유형 신통력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에 전해 내려오는 원광에 대한 이야기.

[개설]

「원광의 신통력」은 경상북도 청도군에 전해 내려오는 승려 원광(圓光)에 관한 전설이다. 원광은 화랑도의 중심 이념인 ‘세속 오계’를 지은 승려로, 600년에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 가슬갑사를 창건하였다.

[채록/수집 상황]

청도군에서 1981년에 발간한 『내 고장 전통문화』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원광이 처음에 입적하여 불법을 배우던 중 서른 살이 되자 한가한 곳에서 수도하기 위해 삼기산(三岐山)에서 오랫동안 홀로 지냈다. 4년 뒤 한 중이 삼기산에 들어와 근처에 절을 짓고 2년여를 살았는데, 그 사람됨이 사나운 데다 주술 닦기를 좋아하였다.

어느 날 밤 원광이 홀로 앉아 불경을 외고 있는데, 문득 한 신이 원광의 이름을 부르더니 원광의 수행 방법을 칭찬하였다. 또한 이웃 중을 비난하면서 다른 곳으로 절을 옮기지 않는다면 화를 당할 것이라고 전하라 하였다. 이튿날 원광이 이웃 중에게 찾아가 신의 경고를 전해 주었으나 이웃 중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날 밤 신이 다시 원광을 찾아와서 이웃 중에게 자신의 말을 전하였는지를 물었다. 이에 원광은 이웃 중을 염려하여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대답하였다. 하지만 신은 이미 원광이 말을 전한 것을 알고 있다며 자신이 어떤 벌을 내리는지 지켜보라고 하였다. 그 밤중에 튼 진뢰(震雷) 소리가 났다.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원광이 놀라서 이웃 중을 찾아가 보니, 산사태가 나서 절이 통째로 묻히고 없었다.

신은 다시 원광에게 나타나 남을 이롭게 하는 공을 세우기를 권유하면서 중국에 가서 수행할 방도를 알려 주었다. 원광은 신이 일러 준 대로 하여 중국에 가서 20여 년을 머물면서 삼장(三藏)을 통달하고 유학술(儒學術)도 배웠다.

600년(진평왕 22)에 신라로 돌아온 원광은 신에게 감사하고자 삼기산을 다시 찾았다. 밤중에 신이 찾아오자 원광이 신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그러자 신이 원광에게 계(戒)를 받기를 원하여 생생상제(生生相濟)[다시 태어나는 모든 세상에서 서로를 구제함]의 약속을 맺었다. 신이 떠나기 전 원광이 신에게 진용(眞容)을 보여 달라고 청하자, 신은 다음 날 동쪽 하늘을 보라고 하였다.

이튿날 원광이 동쪽 하늘을 올려다보니 큰 팔뚝이 구름을 뚫고 나와 하늘 끝에 닿아 있었다. 그날 밤에 신이 찾아와 원광에게 자신의 진용을 보았는지 묻자 원광은 진용이 매우 기이했다고 말하였다. 이로 인하여 삼기산을 팔뚝 ‘비(臂)’ 자를 써서 비장산(臂長山)이라고도 하였다.

신은 원광에게 머지않아 자신의 몸을 고개에 버릴 것이니 원광이 그 혼을 거둬 보내 주기를 간청하였다. 원광이 약속한 날에 고개에 가 보니 검고 늙은 여우 한 마리가 고개에서 헐떡이다가 숨을 거두었다. 원광은 염불을 외며 신의 혼을 전송하여 주었다.

원광이 죽고 난 뒤에 태사(胎死)한 아들을 낳은 사람이 있었다. 속언에 이르기를 스님의 묘에 죽은 아이를 몰래 묻으면 후손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였으므로 그 부모가 몰래 원광의 무덤에 아들을 묻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 법력이 내려 죽은 태아를 무덤 밖으로 내던졌다. 그 말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원광을 더욱 숭상하였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주요 모티프는 신통력이다. 원광은 실재하는 인물이다. 전승 집단은 실존 인물인 원광을 증거로 이야기의 진실성을 부여하고자 하였으며, 신통력을 이야기 전면에 내세우고 속언을 덧붙여 원광에게 신성성을 부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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