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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1107
한자 朴根伊
이칭/별칭 박상근(朴相根),박용술(朴龍述)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고수리 312번지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8년 4월 21일연표보기 - 박근이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1년 11월 18일 - 박근이 추진구·전팔룡과 함께 철도 폭파 계획
활동 시기/일시 1931년 11월 19일 - 박근이 철도 폭파 계획 실행
활동 시기/일시 1931년 12월 14일 - 박근이 대구 지방 법원에서 징역 10년 구형
활동 시기/일시 1931년 12월 18일 - 박근이 대구 지방 법원에서 징역 7년 언도
활동 시기/일시 1934년 - 박근이 1934년 칙령 19호에 의하여 징역 5년 3개월로 감형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박근이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관련사건 시기/일시 1931년 11월 19일 - 박근이 군용 열차 전복 의거
출생지 박근이 출생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고수리 312번지지도보기
활동지 박근이 활동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고수리 312번지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군용 열차 전복 의거

[정의]

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박근이는 1908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고수리(高樹里)에서 출생하였다. 1931년 11월 19일 군용 열차 전복 의거에 참여하였다.

[활동 사항]

박근이(朴根伊)[1908∼?]의 원적은 청도군 종도면[현 매전면] 덕산리 721번지이고, 본적은 청도군 대성면 고수리 312번지이다. 박근이는 청도 토박이로 아버지 박대백(朴大伯)과 어머니 김연손(金年孫)의 맏아들로 태어나 농업에 종사하다가, 21세부터 안기택(安琪澤)의 집에서 고용인으로 일했으며, 1930년 1월부터 11월까지는 이영희 곡물상에서 일했다.

1931년 만주 사변 발발 이후, 일본인의 한국 통치와 차별 정책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박근이추진구(秋振求)·전팔룡(全八龍) 등과 함께 철도 폭파 계획을 세웠다. 1931년 11월 18일 밤 동네의 음식점 김원통(金元通)의 집에서 12시에 귀가하던 중, 만주 지역으로 일본군과 무기를 수송하는 열차가 청도역에 도착하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평소 일제의 군용 열차가 청도역을 통과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이들은 함께 군용 열차를 전복·파괴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에 김광조(金光祚)의 집 부근에서 길이 약 30.3㎝, 폭 21.21㎝, 높이 약 15.15㎝, 중량 약 15㎏의 돌 하나를 주워 선로 내의 침목 위에 설치하였다. 그리고 건널목 서편의 배인상(裵寅相)의 집 앞에서 열차가 지나가다가 전복하기를 기다렸다.

11월 19일 오전 0시 22분 청도역에 도착한 일본군 제8 사단 야포병 제8연대 1개 대대와 병포·중기관총·필마 등 군용 물자를 실은 봉천행(奉天行) 임시 제3 군용 열차는 0시 24분 청도역을 출발, 27분 건널목을 통과하였다. 그러나 이 돌은 열차의 하부에 장치된 제동 장치에 걸려 약 50m 정도 끌려갔으며, 열차를 전복시키거나 파괴시키지는 못했다. 이 사건은 선로를 경비하던 철도 보선 공부(保線工夫)가 발견하고 역장에게 보고하여 일제 경찰의 조사로 전모가 밝혀졌다.

박근이는 1931년 12월 14일 대구 지방 법원에서 징역 10년을 구형받고, 1931년 12월 18일 7년형을 언도받았다. 1934년 칙령 19호에 의하여 징역 5년 3개월로 감형되었다.

[상훈과 추모]

1990년에 건국 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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