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1094
한자 金秉瀅
이칭/별칭 김만술(金萬述)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4년 5월 17일연표보기 - 김병형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김병형 청도군 운문면 일제 경찰 구타 의거
활동 시기/일시 1920년 2월 7일 - 김병형 대구 지방 법원에서 징역 1년 언도받고 옥고를 치름
몰년 시기/일시 1941년 11월 19일연표보기 - 김병형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0년 - 김병형 애족장 추서
관련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청도군 운문면 만세 운동
출생지 김병형 출생지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지도보기
활동지 김병형 활동지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김병형은 1894년(고종 31)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新院里)에서 출생하여 1941년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9일 청도군 운문면 일제 경찰 구타 의거에 참가하였다.

[활동 사항]

청도군 운문면에서는 1919년 3월 18일에 김상구(金相久)·김종태(金鍾台)·김진효(金鎭孝)·손기현(孫琪鉉) 등에 의해서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3월 19일 오후 6시경에 청도 경찰서로부터 일본인 순사 삼상유삼(三上有三), 순사보 하삼금(河三金)·박춘학(朴春鶴)·이병관(李秉觀)·박무석(朴武錫) 등 5인이 신원리로 들어 왔다. 전일 만세 시위의 주동 인물인 김종태김상구 외 6인을 체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만세를 부르고 어디론가 피신한 뒤였다.

일경들은 김종태김상구 등을 찾지 못하자, 김상구의 어머니를 문명 학교로 연행하려 하였다. 이를 목격한 김의택(金義澤)김병준(金秉濬)은 경찰에게 항의하고 동민들을 불러 모았다. 또 강성봉(姜聖鳳)은 조선인 순사보에게 “너희들도 조선인이 아니냐. 만세를 부르는 것이 무엇이 불가한가?”라고 항의하였다. 김병준을 비롯한 동민들이 조선인 순사보 박춘학의 행동을 저지하자, 순사보 박무석·이병관 등이 합세하여 김병준을 구타하기 시작하였다. 이를 목격한 동민들은 박무석과 이병관을 구타하였고, 이를 보고 달려온 삼상유삼까지 구타하였다. 곁에 있던 동네 주민 약 40명은 이 광경에 분노하여 경찰들을 포위하고 곤봉 세례를 퍼부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김석곤은 나팔을 불었고, 소리를 들은 동민 약 300명이 모여들었다. 이에 일경들은 권총 2발을 발사하면서 도망쳤다.

김병형(金秉瀅)[1894∼1941]은 1920년 2월 7일 대구 지방 법원에서 소요 및 공무 집행 방해죄로 징역 1년을 언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2000년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