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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1025
한자 金駿孫
이칭/별칭 백운,동창,연천군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홍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54년연표보기 - 김준손 출생
활동 시기/일시 1482년 - 김준손 임인 별시에 2등으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486년 - 김존손 중시에서 병과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493년 - 김준손 함양 군수로 부임
활동 시기/일시 1498년 - 김준손 무오사화가 일어나 호남으로 유배
활동 시기/일시 1506년 - 김준손 중종반정으로 원종공신에 책록
활동 시기/일시 1507년 - 김준손 경상도 경차관으로 파견
몰년 시기/일시 1508년연표보기 - 김준손 사망
추모 시기/일시 1842년 - 김준손 백동사에 향사
추모 시기/일시 1847년 - 김준손 남원 사동 서원에 향사
묘소|단소 김준손 묘소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김해
대표 관직|경력 직제학

[정의]

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김해. 자는 백운(伯雲), 호는 동창(東窓). 아버지는 사헌부 집의를 지낸 김맹(金孟)이고, 할아버지는 청도 효자로 널리 알려진 김극일(金克一)이며, 증조할아버지는 김서이다. 어머니는 이양(李讓)의 딸 용인 이씨이며, 부인은 첨정을 지낸 고태익(高台翼)의 딸 제주 고씨이다. 아우인 김기손(金驥孫)·김일손(金馹孫) 등이 모두 문과 출신이며, 청도의 거유 김대유의 아버지이다.

[활동 사항]

김준손(金駿孫)[1454∼1508]은 19세에 사마시 생원으로 합격했고, 29세이던 1482년(성종 13) 임인 별시에서 2등으로 급제하였으며, 이어 1486년(성종 17) 현직 관료를 대상으로 한 중시(重試)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홍문관 검토관 수찬 등을 역임하면서 경연에서 성종과 함께 학문과 정치를 논했으며, 이후 이조 정랑을 거쳐 1493년(성종 24) 함양 군수로 부임하여 치적을 쌓아 승진하였다.

그러다가 1498년(연산군 4) 동생 김일손의 사초 문제로 야기된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호남에 유배되었다. 이때 인근에 귀양 왔던 선비들과 함께 거병하여 진성 대군을 추대하려던 차에 반정이 일어나 원종공신으로 책록되고, 연천군(燕川君)에 봉해졌다.

반정 후 승지에 제수되어 중종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하다가 1507년(중종 2) 경상도 인근에서 왜인들의 작폐가 심해지자 경차관으로 파견되었고, 이후 사간·직제학 등을 거쳤다. 전라도 지역에서 함께 반정을 도모했던 이과(李顆) 등이 공신 책봉에 불만을 품고, 이찬(李纉)·윤구수(尹龜壽) 등을 제거하려다 실패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연루되어 고초를 겪었다.

[묘소]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에 안치되었다.

[상훈과 추모]

1842년(헌종 8)에 백동사(白洞祠)에 향사하였고, 1847년(헌종 13)에 남원 사동 서원(社洞書院)에 향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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