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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우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1017
한자 潘佑亨
이칭/별칭 문보,옥계,문효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홍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474년 - 반우형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486년 - 반우형 사헌부 지평 제수
활동 시기/일시 1495년 - 반우형 사헌부 사간 제수
활동 시기/일시 1504년 - 반우형 동지중추부사가 됨
활동 시기/일시 1504년 - 반우형 갑자사화로 파직
활동 시기/일시 1519년 - 반우형 기묘사화로 유배
추모 시기/일시 1506년 - 반우형 중종반정 정국공신 4등으로 녹권되어 이성군에 책봉
성격 문신
성별
본관 기성
대표 관직 대사성

[정의]

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기성(岐城). 자는 문보(文甫), 호는 옥계(玉溪). 시조 반부(潘阜)의 9세손으로, 아버지는 반조(潘慥)이다. 부인은 정경부인(貞敬夫人) 파평 윤씨이다.

[활동 상황]

반우형(潘佑亨)[?∼?]은 1469년(예종 1) 사마시 진사과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1472년(성종 3) 임금이 선정전에 나가서 문신과 성균관 유생들에게 글을 강론할 때 성균관 유생 대표로 뽑혔다.

1474년(성종 5)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친 후 1486년(성종 17) 사헌부 지평에 올랐고, 1490년 이래 성균관의 관원이 되어 가르치는 데 명성이 있었다. 1493년 조봉대부(朝奉大夫)에 올라 사헌부 장령이 되었다. 그 이듬해 전국 각지의 명산대천에 기도하는 사신으로 뽑혀 양진(楊津)으로 파견되었다. 1495년(연산군 1) 사헌부 사간을 거쳐 성균관 대사성이 되고, 1504년(연산군 10) 성균관 동지사를 겸하였다. 같은 해 동지중추부사·한성부 좌윤·한성부 우윤 등에 올랐다.

갑자사화 때 파직당하는 등의 어려움을 겪다가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로 유배되었으며, 명종 때에 신원되었다.

[학문과 저술]

어릴 때부터 소학(小學)으로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였고 성장하면서는 성리학으로 직분을 다하였을 뿐 아니라 부모 모시기에 효성을 다하여 사람들이 출천지 효자라 하였다. 혼란했던 정세에서도 전후 6년 동안 시묘 살이를 하였는데, 반우형의 효성에 하늘도 감동하였던지 호랑이가 보호하였다고 전한다.

시문집으로 『옥계문집(玉溪文集)』이 있는데, 1881년(고종 18) 후손 반진하(潘震夏)가 편집·간행하였다.

[묘소]

실전되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으로 정국공신 4등으로 녹권되어 이성군(利城君)에 책봉되었다. 글의 뜻에 밝았으므로 오로지 성균관에서의 가르침을 담당하게 하였다 하여 기성군(岐城君)으로 개칭되었다. 현재 홍천 사당에 배향하여 해마다 시제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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