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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종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959
한자 閔宗儒
이칭/별칭 충순(忠順)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박홍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245년연표보기 - 민종유 출생
활동 시기/일시 1263년 - 민종유 문과에 급제함
활동 시기/일시 1263년연표보기 - 민종유 청도 감무로 관직에 나감
활동 시기/일시 1309년 - 민종유 중대광 첨의찬성사 판선부사로 벼슬을 그만둠
활동 시기/일시 1319년 - 민종유 복흥군의 봉작을 받음
활동 시기/일시 1321년 - 민종유 복흥군의 호를 없애고 다시 찬성사가 됨
몰년 시기/일시 1324년연표보기 - 민종유 사망
부임|활동지 청도 - 경상북도 청도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여흥
대표 관직 찬성사

[정의]

고려 후기 청도 감무를 지낸 문신.

[개설]

민종유(閔宗儒)[1245∼1324]는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청도 감무로 부임하여 법을 공평하게 적용하여 칭송을 받았다. 충렬왕 때 삼사 우윤에 오르는 등 여러 관직에 두루 기용되었으며, 복흥군의 봉작을 받기도 하였다.

[가계]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평장사 민영모(閔令謨)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호부 시랑을 지낸 민황(閔滉)이다. 유천우(兪千遇)의 사위이기도 하다. 아들로는 민적(閔頔)과 민서(閔叙)가 있다.

[활동 사항]

민종유는 함부로 사람과 사귀지 않고 일가친척과 돈독히 지냈으며 한 번도 남에게 청탁을 한 적이 없을 정도로 깨끗한 성품을 지녔다. 어리 나이인 11세 때 이미 왕자 시양부(始陽府)의 학우가 되고, 19세인 1263년(원종 4)에 문과에 급제하여 청도 감무(淸道監務)로 부임했다. 당시 청도는 대성(大姓)들이 많고 문물이 발달하여 다스리기 어려운 고을로 소문이 나 있었다. 하지만 민종유는 어린 나이임에도 청탁을 받지 않고 법을 공평하게 적용하여 칭송을 받았는데, 이런 사실들이 여러 문헌에 실려 있다. 그 공으로 도병마 녹사(都兵馬錄事)로 전직되었는데, 당시 도병마사로 있는 유천우가 기특하게 여겨 사위로 삼았다.

충렬왕 때 삼사 우윤(三司右尹)에 오르고, 판통례문사(判通禮門事)로 옮기는 등 여러 관직에 두루 기용되었다가, 밀직 부사 형조 판서(密直副使刑曹判書)에 이르러 관직에서 물러났다. 그 후 다시 관직에 나가 전법 판서 권수판밀직사사 감찰대부(典法判書權授判密直司事監察大夫)를 거쳐 찬성사(贊成事)가 되었다. 1309년(충선왕 1) 중대광 첨의찬성사 판선부사(重大匡僉議贊成事判選部事)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상훈과 추모]

1319년(충숙왕 6) 복흥군(福興君)에 봉해졌으나, 1321년 왕족이 아니면서 군(君)에 봉하여진 사람의 봉작(封爵)을 거둘 때 봉작을 내놓고 다시 찬성사가 되었다. 시호는 충순(忠順)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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