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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여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887
한자 星州呂氏
분야 성씨·인물/ 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강래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성주 이씨 본관 - 경상북도 성주군
입향지 성주 이씨 입향지 -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예전리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성주 여씨 집성지 -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예전리|청도읍 사촌리지도보기
성씨 시조 여어매
입향 시조 여시화

[정의]

여어매(呂御梅)를 시조로 하고, 여시화(呂時華)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연원]

성주 여씨(星州呂氏) 시조 여어매(呂御梅)[또는 여어(呂御)]는 중국 당나라 사람이다. 877년(헌강왕 3)에 황소의 난을 피해 신라로 귀화해 신라 멸망 후 고려에서 공조 전서(工曹典書)를 지냈고, 성산 벽진[현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에 정착하였다. 그러나 병란으로 관련 문서가 소실되어 계보를 명확히 알 수 없게 되자, 후손들은 고려 말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오른 여양유(呂良裕)를 중시조로 하고 세거지인 성산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성주 여씨의 대표적 인물은 고려 시대 판도 판서(版圖判書)를 지낸 여양유(呂良裕)의 아들 여위현(呂渭賢), 조선 시대 공조 판서를 지낸 여극회(呂克誨), 사복시 정(司僕寺正)을 지낸 여문승(呂文承) 등이 있다. 그 밖에 여희림(呂希臨), 의병장 여주목(呂株穆), 독립운동가 여준(呂準) 등이 있다.

[입향 경위]

1600년대 말 경기도 양주에 살던 여시화(呂時華)가 청도군 매전면 예전리에 입향하였으며, 1700년대 말 경상도 현풍에 살던 여의흥(呂宜興)이 청도군 청도읍 사촌리에 입향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황]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청도군 내에 30가구 85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2012년 현재 매전면 예전리에 15가구 내외, 청도읍 사촌리에 7∼8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관련유적]

청도군 매전면 예전리에 용운재라는 재실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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