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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성 입안」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830
한자 南壽星立案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작성 시기/일시 1741년 1월 - 「남수성 입안」 작성
발급 시기/일시 1741년 1월연표보기 - 「남수성 입안」 발급
수급 시기/일시 1741년 1월 - 「남수성 입안」 수급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4년 9월 30일 - 「남수성 입안」 한국학 중앙 연구원의 『고문서 집성』70에 영인본 수록
소장처 의령 남씨 종가 -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미촌리
수급처 남수성 -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미촌리
성격 고문서
관련 인물 남수성
용도 증빙
발급자 청도 군수
수급자 남수성

[정의]

1741년 청도군에서 발급한 노비 매득에 대한 증명 문서.

[개설]

「남수성 입안(南壽星 立案)」은 1741년(영조 17) 1월 청도 군수가 남수성(南壽星)이 노비를 매득(買得)한 사실을 증명해 주기 위해 발급한 증명 문서인 입안(立案)이다. 해당 자료는 지금까지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미촌리에 세거하고 있는 의령 남씨(宜寧 南氏) 후손들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

[제작 발급 경위]

1741년 당시 경상도 밀양부(密陽府)에 거주하고 있던 남수성은 강우주(姜佑周)라는 인물로부터 노비를 매득하였다. 이에 청도 군수가 매득한 사실을 증명하는 입안을 발급하였다.

[형태]

각각 1매로 이루어진 명문(明文), 소지(所志), 초사(招辭) 2편, 입안을 하나로 점련(粘連)하였다. 점련된 총 길이는 가로 42㎝, 세로 180㎝이다. 한자와 이두를 함께 사용하여 표기하였다.

[구성/내용]

「남수성 입안」에는 입안을 비롯하여 이 과정에서 작성된 명문, 소지, 초사가 함께 점련되어 있으며, 문서는 명문, 소지, 초사, 입안의 순으로 작성되었다. 가장 먼저 ‘건륭 5년 경신 11월 28일(乾隆五年庚申十一月二十八日)’자 명문을 수록하였다. 이 명문은 1740년 11월 28일 유학(幼學) 남수성이 강우주에게 노비 2구(口)를 매득하면서 작성한 것이다.

두 번째로 작성된 문서는 화민(化民) 남수성이 1741년 1월 청도 군수에게 올린 소지이다. 노비 2구의 매득 사실을 증빙하는 입안 발급을 요청하기 위해서 작성된 것으로, 노비의 연고지가 청도군이었기에 청도 군수에게 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소지에는 초사를 작성하라는 청도 군수의 제음(題音)이 있다.

세 번째로 작성된 문서는 청도 군수의 제음에 따라 작성된 초사 2편이다. 초사는 매매 사실을 관련자가 증언하면서 작성된 것이다. 이 중 한 편은 노비를 판매한 전 주인 강우주의 것이며, 나머지 한 편은 매매 명문 작성 시 증인이었던 유학 백운채(白雲彩)와 필집을 담당하였던 유학 손서대(孫緖大)의 증언을 함께 담은 것이다.

마지막 네 번째로 작성된 것이 입안이다. 1741년 1월 이상의 매매 사실과 사유를 기록하고 남수성의 노비 소유를 인정해 주는 최종 증빙 문서로, 청도 군수 명의로 작성되었다.

[의의와 평가]

「남수성 입안」은 조선 시대 노비 매매의 과정과 이를 통한 사족 가문의 재산 증식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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