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화양읍 만세 운동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449
한자 華陽邑萬歲運動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19년 3월 6일연표보기 - 화양읍 만세 운동 모의
종결 시기/일시 1919년 3월 15일 - 화양읍 만세 운동 주모자 예비 검속
발생|시작 장소 화양읍 만세 운동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성격 독립운동|항일 운동
관련 인물/단체 문주상|박영범|김준호|김명현|김영훈|박창범|이태진|신종락|곽갑룡

[정의]

1919년 3월 15일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에서 계획된 만세 시위운동.

[개설]

3·1운동 당시 청도군에서는 3월 중순부터 5월 초순에 걸쳐 모두 7회의 크고 작은 만세 시위운동이 발생하였다. 특히 만세 시위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시위 참가자들은 관공서 습격, 일본 경찰 구타, 일본인과의 충돌, 자위회 공격 등 점차 격렬한 무력시위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화양읍 만세 운동 은 1919년 3월 6일, 준비 단계에서 모의하던 사람들이 예비 검속되었다.

[역사적 배경]

1919년 3월 1일 만세 시위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청도군 지역은 일찍이 일제의 근대적 민족의식을 갖춘 청년 지식인들이 독자적으로 만세 시위를 계획하거나 주도하였고, 나아가 농민 및 노동자 계층이 참여함으로써 대중적인 시위운동으로 발전하였다.

[경과]

1919년 3월 6일 청도군(淸道郡) 화양읍(華陽邑)에서도 문주상(文周祥), 박영범(朴榮範), 김준호(金峻琥), 김명현(金明賢), 김영훈(金英勳), 박창범(朴昌範), 이태진(李泰鎭), 신종락(申宗洛), 곽갑룡(郭甲龍) 등이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결과]

1919년 3월 15일부터 25일까지 문주상 등 화양읍 만세 운동을 준비하던 사람들이 일제 경찰에 의해 예비 검속되었다.

[의의와 평가]

청도군 화양읍 만세 시위운동은 서울이나 평안도 등 각처에서 전개된 만세 운동의 영향을 받아 계획되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일어나 만세 운동으로 인해 일제의 경계가 워낙 심하던 때라 준비 단계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