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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각면 전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429
한자 豊角面戰鬪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홍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건
관련 인물/단체 최여준|박경전|손처눌

[정의]

임진왜란 당시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의병들이 왜군을 상대로 벌인 전투.

[개설]

풍각면 전투임진왜란(壬辰倭亂)[1592∼1598] 당시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조직된 의병들이 왜군을 상대로 벌인 전투 중의 하나이다.

[역사적 배경]

1592년 4월 13일 부산을 침입한 왜군 중 제1군은 4월 14일에 동래 부사(東萊府使) 송상현(宋象賢)이 버틴 동래성을 함락시키고, 이어 김해·양산·울산·언양까지 파죽지세로 올라왔다. 그리하여 4월 18일에는 밀양을 함락되고, 4월 20일에는 청도까지 점령하였다. 왜적의 제1군 본대가 휩쓸고 지나간 청도는 바로 좌우측에 자인·경주와 창녕을 목표로 한 제2군과 제3군이 북상하는 길목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전쟁 초기부터 피해가 극심할 수밖에 없었다.

4월 20일 군수 배응경(裵應褧)이 경상도 순찰사 김수(金睟)와 대구와 청도 경계에 위치한 최정산(最頂山)[지금의 팔조령]으로 미리 피해 버렸기 때문에 청도읍성이 적의 수중에 손쉽게 넘어갔다. 임진왜란 직전에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수축한 읍성과 산성들이 한 차례의 전투도 없이 점령당하고 만 것이다.

[경과]

청도에 이어 대구까지 왜군의 수중에 들어가자, 당시 대구 지역에 살던 최여준(崔汝峻)[1567∼?]은 노모를 업고 최정산에 숨어들어 화를 면했다. 이후 최여준은 대구의 선비인 여모당(與慕堂) 손처눌(孫處訥)[1553∼1634]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풍각면 전투에서 왜적을 크게 격퇴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오산 기슭으로 의병진을 옮겼다가 청도 조전장(助戰場) 박경신(朴慶新)을 비롯하여 박경전(朴慶傳), 김명원(金鳴遠), 이정욱(李廷郁), 이용운(李龍雲), 이철(李澈) 등과 연합하여 청도읍성을 탈환하는 데 기초를 닦았다.

[의의와 평가]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이 함락된 이래 파죽지세로 올라오던 왜군을 청도에서 의병들이 격퇴하였다. 의병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청도를 지켜 냈다는 점에서 자랑스러운 역사의 귀감이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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