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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화촌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407
한자 上火村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일대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
집필자 강재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정 시기/일시 757년연표보기 - 상화촌현에서 유산으로 개칭 후 화왕군의 영현이 됨
개정 시기/일시 940년 - 상화촌현, 유산에서 풍각현으로 개칭

[정의]

삼국 시대 신라 풍각현의 옛 지명으로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개설]

상화촌현은 757년(경덕왕 16) 지방 제도 개편으로 유산현이라고 개칭되기 전까지 불리던 지명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일대는 신라 때에는 상화촌현으로 불리었다. 관련 기록의 부족으로 제정 경위는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다.

[관련 기록]

상화촌현의 지명 변천 과정을 알 수 있는 기본적인 자료는 『고려사(高麗史)』 지리지 밀성군 풍각현 조이며, 이후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한 각종 지리지나 읍지 등의 자료는 대부분 『고려사』 지리지를 따르고 있다. 다만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는 이전 지리지에서는 볼 수 없었던 기록들이 있다.

『고려사』 지리지 풍각현 조에 의하면, “본래 상화촌현으로 고려 때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고 현종 9년(1018)에 밀성군에 붙였다.[本上火村縣 高麗改今名 顯宗九年 來屬]”라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밀양도호부 속현 조에 의하면, “풍각현은 부에서 서북으로 50리[19.636㎞]에 있다. 본래 상화촌현인데 고려 때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현종 9년에 밀양에 내속되었다. 유산이라고도 한다.[在府西北五十里 本上火村縣 高麗改今名 顯宗九年來屬(一名幽山)]”라고 하였다.

『대동지지』 대구 고읍 조에 의하면 “풍각은 남으로 70리[27.491㎞]인데 동남쪽으로는 밀양과 50리[19.636㎞] 떨어져 있다. 본래 상화촌인데 경덕왕 16년(757) 유산으로 고치고 화왕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 태조 23년(940) 풍각으로 고쳤다.[南七十里 東南距密陽五十里 本上火村 景德王十六年改幽山爲火王郡領縣 高麗太祖二十三年改豊角]”라고 하였다.

[내용]

상화촌현이라는 지명은 신라 때에 사용된 지명이지만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는 확인할 수 없고 처음 보이는 곳은 『고려사』에서부터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대단히 소략한 편이다. 이에 반해 후대에 간행된 『대동지지』에서는 이전 지리지에서는 보이지 않는 비교적 구체적인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즉, 『대동지지』를 제외한 다른 지리지에는 고려 때 풍각으로 개명되기 전까지 상화촌현이라는 지명을 유지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대동지지』 대구 고읍 조에 의하면 상화촌현은 757년 지방 제도 개편으로 유산(幽山)으로 개칭된 후 화왕군의 영현이 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풍각현의 이칭으로 유산을 기록한 것과는 비교된다.

[변천]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일대는 신라 때에는 상화촌현으로 불리었다. 그러나 757년 지방 제도 개편으로 유산(幽山)으로 개칭된 후 화왕군(火王郡)의 영현이 되었다. 이후 940년 통일 전쟁이 일단락된 후 전반적인 체제 개편의 일환으로 진행된 지방 제도 개편으로 풍각현으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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